[조선일보 유석재기자]

푸른 이끼 촘촘히 깔린 거대한 고성(古城)은 침울한 하늘을 배경으로 버티고 섰다. 근처 바다에서 날아온 갈매기들이 어지럽게 떠도는 강변에서 몇 블럭 올라가면, 스모키 화장법으로 눈 주위를 어둡게 칠한 청소년들이 클럽 앞에 줄지어 서 있다. 폐광(廢鑛)과 첨단 줄기세포 연구가 공존하는 곳. 만약 천사가 인간이 사는 지상을 찾아온다면, 영국 북동부 도시 뉴캐슬(Newcastle)만큼 어울리는 곳도 없으리라.

그곳에서 작가 데이비드 알몬드(David Almond·55·사진)는 관절염에 걸린 천사가 낡은 창고로 떨어지는 소설 ‘스켈리그’를 썼다. 영국 카네기 상과 휘트브레드 상 같은 주요 문학상을 휩쓸고 청소년 문학계의 신성(新星)으로 떠오른 작가다. 그의 작품 ‘푸른 황무지’(비룡소 刊, 원제 Kit’s Wilderness)의 국내 출간을 계기로 그를 만났다. 천사 스켈리그가 입었다고 묘사된 검은 가죽재킷을 걸친 그는 여전히 동심을 간직한 듯 붉게 상기된 뺨을 구레나룻으로 감추고 있었다.

“‘푸른 황무지’는 성장에 관한 소설입니다. 배경이 된 광산은 과거 뉴캐슬의 중요 산업이었고, 아이들이 벌이는 ‘데스 게임(death game)’은 실제로 제가 어렸을 때 했던 놀이였죠.” 그러니까 퇴락한 광산 마을의 황무지에서 두 사춘기 소년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이 이야기는 작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셈이다. 술래로 뽑힌 아이가 ‘죽음’을 선고 받고 동굴 속에 남겨지는 ‘데스 게임’은 죽음의 과정을 거친 부활, 즉 청소년의 성장을 상징한다. ‘스켈리그’에 이어 이번에도 등장하는 병든 아기 여동생의 이야기는 실제로 어렸을 때 누이를 여의었던 아픔에서 비롯됐다.

“아이들은 혼자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죠. 주인공인 키트와 할아버지와의 관계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모티브입니다.” 마을의 옛 이야기를 잘 아는 할아버지는 아주 오래 전 갱이 무너져 숨진 사람들을 적어놓은 추모비를 키트에게 보여준다. 그 뒤 키트는 탄광의 어둠 속에서 죽은 사람들의 생전 모습을 보게 된다. 친구 애스큐와 함께 한 기나긴 일탈 끝에 이른 곳은 ‘부활’, 그리고 ‘가족의 복원’이다.

그는 “10대 청소년기가 되면 인생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동시에 아름답기도 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말로 ‘질풍노도(疾風怒濤)’의 본질을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그것을 깨닫고 어른이 되는 동시에 그들의 부모인 어른들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죠. 세상은 물론 위험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걸 기쁨으로 바꿔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알몬드의 최근작은 ‘진흙(Clay)’. 소년이 진흙으로 만든 인형이 생명을 얻는 이야기로, 역시 성장소설이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이런 신비로운 현상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천사는 어디에서 나타나서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웃으며 말했다. “글쎄, 그건… 저도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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