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쓴 편지는 이즈음 보기 드물다. 친구에게 쓰는 우정어린 편지든, 사랑하는 이에게 애정을 담뿍 담아 보내는 편지든 모든 글자는 디지털화해 컴퓨터 화면에, 휴대전화 액정에 떠오른다. 종이에 촘촘히 적어내려간 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연례 행사가 돼버렸다.

편지는 옛사람들이 애틋한 마음을 전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편지 하나 보내는 데 정성도 많이 들었다. 말하고픈 내용을 가다듬어 가지런히 적어야 했고, 그걸 전달하기 위해서 다른 이의 발품을 빌려야 했다.

옛날 선비들의 편지글을 엮은 ‘간찰, 선비의 마음을 읽다’는 잊고 있던 편지의 향취를 일깨운다. 고려시대 이규보 이제현 정몽주 등 3명과 조선시대 김시습 이황 이이 허균 정약용 등 24명이 친구에게 부친 간찰을 담았다. 편지를 쓴 저자들은 학문 정치 문학 예술 등 우리 지성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들이다.

간찰(簡札)은 본래 죽간과 목찰에 작성한 글이란 뜻. 보통은 종이에 적거나 비단에 적은 편지를 모두 가리킨다. 간찰에는 지은이의 개성이나 감정이 잘 드러난다. 받는 이를 위해 쓰인 글이므로 상대를 위한 예의나 배려가 곳곳에 스며 있다. 간찰은 어떠한 것이라도 모두 형식의 구속과 수사적 일탈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작성자의 숨결과 생각의 편린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책에 실린 간찰은 우정을 담고 있다. 작성자들은 학문적 고독감, 정치적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친우들의 도움이나 이해를 청했다.

정책을 입안하거나 구국 의지를 실현하는 데 친구의 조언을 기대하기도 했다. 때로는 예술적 취향, 구도에 대한 열정, 갑갑한 현실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기도 했다.

“요사이 집에서 술을 빚었는데, 아주 향기롭고 텁텁하여 마실 만합니다. 그대들과 마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살구꽃이 반쯤 피었고 봄기운이 확 풀려 사람들을 도취시키고 다감하게 만듭니다. 이런 좋은 계절에 술을 마시지 않고 어쩌겠습니까? 이군이나 박환고와 함께 와서 마시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집 술이 며칠 되지 않아 바닥날 것이니, 늦게 오시면 물만 마시는 곤욕을 보게 될 겁니다.”(이규보가 친구 전탄부에게 쓴 편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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