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최고의 드라마 작가요 시나리오 작가였던 한운사. 1950년대 말에서 70년대 사이 한운사가 없었다면…. 아마 많은 국민은 힘들고 재미없는 나날을 보내야 했으리라. 60년대 초 그가 집필하는 ‘
현해탄은 알고 있다’가 방송될 시간이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라디오가 있는 전파사로 몰려들었다.
요즘으로 치면 ‘
모래시계’나 ‘
대장금’을 뛰어넘는 인기였다. 그가 시나리오를 쓴 ‘빨간 마후라’와 ‘남과 북’은 관객 1000만명을 모은 요즘 모 영화처럼 당시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모았다. 그 비결은 탁월한 글솜씨에도 있었겠지만,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쳐온 그 자신의 체험담이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유별난 인생 역정이 다시 한편의 드라마 같은 회고담으로 피어났다. 언제나 대중에 애정을 갖고 글을 쉽게 써야 한다고 말해온 한운사. 그래서 85세 노장의 회고담은 잡는 순간 거침없이 술술 읽힌다.
회고담은 ‘부민관 사건’으로 시작된다. 1943년 일본 주오대 학생이던 한운사는 부민관에서 연설하고 있는 일본 총독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고이소 총독에게 묻겠소. 우리들이 전쟁에 나가면 조선 동포들의 안위를 보장해 줄 수 있겠소?”라고 당돌한 질문을 던진 것. 그는 그 자리에서 무참히 끌려나왔다. ‘대형사고’를 치고 학병으로 입대한 그는 군 생활이 편안할 리 없었다. 그때의 괴로운 학병 체험을 다룬 작품이 바로 ‘현해탄은 알고 있다’(3부작)였다.
그는 한국전쟁 때는 공산 치하의 세상이 어떤 것인지 한번 보겠다며 피란을 가지 않고 서울에 남았다가 의용군으로 끌려갈 뻔했으며, 서울 수복 후에는 공산주의자로 몰려 홍역을 치렀다. 1957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할 때는
이중섭,
이어령 같은 거물을 발굴했다. 작가의 파란만장한 삶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저절로 거쳐간다. 우리네 인생도 저 구름처럼 허허롭게 가는 것. 책 제목은 저자의 이름 ‘운사(雲史)’에서 따왔다.
정성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