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A Conquest of Tibet
스벤 헤딘 지음, 윤준·이현숙 옮김
364쪽, 2만3000원
어린 시절 여행기를 읽으며 탐험가를 꿈꾼 사람은 많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스벤 헤딘(1865~1952)은 탐험이 꿈 정도가 아니라 운명이었다. 일찌감치 탐험의 열정에 빠져든 뒤 평생을 그 열기 속에 살았다. 그는 탐험가로 일생을 보낼 준비를 하기 위해 여러 대학에서 지리학.지질학.생물학.소묘.언어 등을 공부했다. 꼭 100년 전에 티베트 고원을 횡단하던 그는 희박한 공기 속에서도 쉴 줄을 모른다.
"나는 지도를 그리고, 스케치를 하고, 바위와 식물 표본을 수집하고, 기상 관찰을 하는 일에 계속 몰두하느라고 캐러밴 뒤에서 말을 타고 갔다."
스벤 헤딘이 당대 최고의 탐험가로 꼽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불굴의 정신이다. 영하 40도로 떨어지는 지옥 추위로 바로 옆에서 말과 낙타가 선 채로 얼어 죽고 탐험대원들이 '죽는 게 더 낫겠다'며 나자빠지는 상황에서도 그는 결심한다. "나는 불가능한 일, 즉 아시아 지도상에 마지막까지 남은 가장 큰 땅덩어리의 정복을 시도해 보지도 않은 채 고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1대 타시 라마의 사당 '티베트 원정기'는 그가 남긴 50여 종의 여행기 가운데서도 '아시아 탐험의 성경'이라 불리는 걸작이다. 1896년과 1900~1901년, 1906~1908년 세 번에 걸쳐 티베트를 탐험한 기록을 담았다. '정복'이란 단어가 보여주듯 서구 근대인의 시각에서 보고 쓴 한계가 있지만, 구경꾼이 아닌 탐험가의 시선은 엄정하고 정확하다. 티베트를 신비화하거나 알맹이 없는 허황된 묘사로 이어지는 국내 여행기와는 다른 것이다. 티베트를 이렇게 온전하게 보여준 여행기는 없었다. 수많은 후배가 그의 발자국을 따라 실크 로드로 들어갔다. 비단길의 보고서라 할 '티베트 원정기'는 20세기 실크로드학의 가장 중요한 저본이라 할 수 있다. "해발 5130미터에 올라와 있었다. 이 산계(山系)는 동서로 티베트를 가로질러 히말라야 산맥과 나란히 뻗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트랜스히말라야 산맥'이라고 명명했다. (…) 티베트인 외에 어느 누구도 이곳에 와본 적이 없었다. 이곳은 내 땅이었고, 나는 이곳을 정복한 것이다."
스벤 헤딘이 직접 그린 200여 점의 풍광.풍물.사건 소묘는 사진이 따라갈 수 없는 정조를 풍긴다. 전형적인 서구 부르주아인 그가 티베트 사람과 풍속과 종교에 조금씩 마음을 여는 묘사는 건조체면서도 문학의 향기를 풍긴다. "산봉우리와 등성이에서 내려다보면 눈 덮인 들판은 현기증 나는 흰색으로 펼쳐졌고, 지반이 침하된 곳 가운데의 호수들은 돌과 자갈이 깔린 바다 속의 터키석처럼 반짝거렸다. 이 장엄한 환경에서 우리는 대성당에 들어설 때 느끼는 숭배의 염과 흡사한 어떤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티베트 원정기'는 학고재가 펴내는 '문명 기행' 시리즈의 두 번째 책. 문명교류사 연구자인 정수일 교수가 역주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이은 보석 같은 탐험기가 초여름 독서 시장에서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