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적 보편성'이란 말이 있다. 어려워 보이지만 풀이하면 쉽다. 가령 여성의 가슴엔 당대적 보편성이 없다. 서양미술사에서 여성의 가슴은 미의 척도지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나 여성전사가 모여 산다는 아마존 정글에서 여성의 가슴은 거추장스런 존재다. 2006년 5월, 당대의 보편성을 획득한 것이 있다면, 역시 축구일 터이고.

최근 문단에서도 당대적 보편성을 실감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한 '2006, 젊은 작가들'이란 행사 얘기다. 번역원은 외국의 젊은 작가 16명을 초청해 국내 또래 작가들과 일주일 동안 어울리게 했다. 당대적 보편성은, 윤지관 번역원장이 행사 소개 자리에서 썼던 말이다. 인종.문화.언어가 달라도 문학이 재현하는 오늘과, 추구하는 가치는 한가지라는 취지였다.

당대적 보편성을 몸소 증명하는 소설도 출간됐다. 이번에 방한한 아르헨티나 작가 마르셀로 비르마헤르(40)의 '유부남 이야기'(문학동네)란 단편집이다. 소설은 아르헨티나에 사는 유부남의 속내를 치명적일 만큼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지구 반대편 얘기로 치부하면 그만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니까 문제다. 아르헨티나 유부남과 대한민국 유부남은 끔찍이도 닮아있었다. 단편 '마차'의 한 토막이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된 후부터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는 것은 기대 반, 괴로움 반이 되어버렸다. 기대 반이라는 것은 한번이라도 편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네 살짜리 우리 아들이 얌전히 있어주기를 바라는 것이고, 괴로움 반이라는 것은 악을 쓰고 쿵쾅거리는 것도 모자라 물을 쏟고 소스를 천장과 바닥으로 부양과 낙하를 반복시키는 아들 녀석의 재롱 잔치 한가운데서 음식을 한 숟가락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는 것을 뜻한다.'

이 유부남도 한때는 '아들의 출생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사건'이었던 남자다. 그러나 세월이 그를 유부남으로 만들었다. 이 말고도 예의 익숙한 유부남들이 출연한다. 아내 몰래 옛 애인에게 수작 걸다 망신당하는 유부남부터 아들의 유치원 친구 엄마와 불륜을 도모하다 홍역을 치르는 유부남까지. 소설을 읽고서 알았다. 유부남은, 축구보다도 당대적 보편성을 띈 존재다.

영어에 'childproof'란 단어가 있다. '아이들이 망가뜨리지 못하도록 또는 어린이에게 안전한'이란 뜻이다. 같은 맥락으로 소설은 'wifeproof'다. 아니 'wifeproof'가 되도록 조치해야 한다. 아내가 소설을 읽을 경우 바가지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세상 모든 아내에게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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