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티네 아이헬 지음, 송소민 옮김, 갤리온, 314쪽, 9500원
클림트
엘리자베스 히키 지음, 송은주 옮김, 예담, 440쪽, 9000원
키스만으로도 오르가슴을 느끼게 해주는 그림이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다. ‘키스’란 제목의 그림과 조각이 제법 되지만, 키스가 시들해질 나이에도 이상하게 그 그림은 ‘약발’이 받는다. 에로틱 무드와 관능이 꿀처럼 흐르는 현란한 그림에서 눈을 감고 황홀경에 취해 있는 여자는 관음증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하다. 저토록 환상적인 키스를 받고 있는 여자는 누구인가?
14명의 사생아를 낳았다고 전해지며, 수많은 모델이나 사교계 여자들과 자유분방한 섹스를 즐겼으나 절대 결혼은 하지 않았던 오스트리아의 화가 클림트. 그의 전기적 사실의 틈새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쓴 '클림트'란 제목의 소설이 동시에 나왔다. 그 중 엘리자베스 히키의 장편소설은 '키스'의 여주인공이 누굴까라는 호기심에서 싹이 텄다.
작가는 그 주인공이 평생 결혼하지 않고 클림트 곁을 지킨 에밀리 플뢰게라고 상상하며 그녀의 시점에서 소설을 풀어나간다. 그녀는 클림트의 애정행각에서 상처도 받지만 사랑의 방정식과 줄다리기를 이해한 영리한 여성이다. 이 소설은 역사소설의 요소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순수연애소설이다.
"자신만 사랑하고 찬양받기만 좋아하는" 예술가를 사랑한다는 것, 사랑이란 어쩔 수 없이 "종양처럼 가슴속에 의심을 품고 그 의심이 스스로를 갉아먹는" 고통스런 관계라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싶은 걸까. 관계의 영속성은 욕망과 결혼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나 절제와 거리두기를 담보할 때 얻을 수 있는 듯 보인다. 모델들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에밀리의 사랑에 대한 균형감과 심리가 탁월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책 사이에 사실적인 초상화들을 끼워 넣어 모델 면면을 보는 즐거움도 제공하고 있다.
또 한 권의 '클림트'는 독일 작가 크리스티네 아이헬이 예술영화의 거장 라울 루이즈 감독의 시나리오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클림트의 생애와 연애담을 친절하게 보여주는 서술구조가 아니라 세기 전환기의 혼란스런 분위기와 클림트의 작가 의식에 초점을 맞췄다. 어느 날 클림트는 파리에서 거울 속에 나타난 한 남자의 소개로 클레오 레아라는 관능적인 여인을 만나 정사를 치르게 되고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러나 그녀는 홀연히 사라지고 그는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세계에서 클레오 레아, 혹은 클레오 레아의 복제품, 또는 클레오 레아의 패러디인 여인을 찾아 헤맨다. 클레오 레아는 그가 추구하는 예술의 정점이 된다. 기억과 환상 속에서 그의 의식은 분열되고 현실의 시공간도 모호해진다. 그러나 결국 주인공의 이런 혼미한 다층적 의식구조를 불러오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정답을 고민하면서 읽으면 한층 더 가독성이 있다. 이 소설은 영화를 모방한 소설처럼 장면 전환이 빠르다. 소설 중에 클림트는 에곤 실레에게 말한다. "예술에는 창조자가 존재하지 않소. 우리는 다만 모방할 뿐이오." 두 소설은 색깔이 다르다. 하지만, 창조와 모방의 경계가 불분명한 이 시대에 새로운 소설 모델로 일독할 만하다.
권지예(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