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학비평지 중 하나인 ‘
리브로 엡도’는 매년 9월 프랑스 서점 208군데를 설문조사 해 700여 권의 소설 중 최고의 프랑스 소설과 외국 소설을 꼽는다. 2005년 수상작은 글쓰기의 달인 폴 오스터의 <
브루클린 풍자극>과 필립 클로델의 <무슈 린의 아기>.
폴 오스터와 어깨를 나란히 한 필립 클로델은 우리에겐 <회색 영혼>으로 알려진 실력파 작가로 ‘어두움’ 으로 가려진 삶의 ‘따뜻함’을 찾아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리브로 엡도’는 “<회색영혼>이나 <무슈 린의 아기>를 읽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된다”고 평했다.
‘침묵’에 많은 것을 할애하는 작가 필립 클로델의 문학은 ‘비(非) 언어적 의사소통’을 구사한다. 살인 사건을 둘러싼 마을 전체의 침묵을 다룬 ‘회색영혼’, 형무소에서 죄수를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열쇠꾸러미 소리’에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그렸다.
신작 <무슈 린의 아기> 역시 낯선 땅에서 서로의 언어를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두 남자가 등장한다. 정확한 지명을 알 수 없는 서양의 한 항구도시. 체구가 작은 동양노인 무슈 린이 나타난다. 그가 목숨처럼 여기고 있는 작은 여행가방과 어린 손녀가 눈에 띈다. 낯선 곳, 처음만나는 추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두려움을 느끼는 노인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온 한 남자. 그는 아내를 잃고 상심에 빠져 있던 바크라는 인물이다. 소설은 언어도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의 우정을 그리며 ‘침묵’의 위대함을 이야기 한다.
필립 클로델은 작품에 ‘보편성’을 부여하기 위해 주인공 무슈린의 국적을 한 번도 드러내지 않는다. 독일인에게는 노인이 내리는 항구가 함부르크처럼 느껴지고, 프랑스인에게는 마르세이유처럼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언어’는 물론‘국적’에도 갇히지 않는 필립 클로델 문학의 매력이다.
장애 아동을 가르쳤던 필립 클로델은 언어를 쓰지 않고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한때 안간힘을 썼다. 말이 통하지 않고도 형성되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독특한 ‘은유’를 발견한 그는 공허한 대화보다 ‘침묵’ 사이에서 발견되는 특별한 교감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는 필립 클로델 문학의 중요한 ‘근거’로 작용하게 됐다.
책을 쓸 때는 혼자이나 책이 나오고 나면 수천 명의 사람들과 강한 연대감이 생긴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는 필립 클로델. 묵직한 울림을 주는 그의 독특한 문학세계가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