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드’(2003)보다 2년 먼저 출간된 댄 브라운(1964∼)의 ‘디셉션 포인트’(2001)의 줄거리는 가령 존 그리샴(1955∼)의 소설들을 저본으로 제작되어진 수많은 헐리우드식 정치음모 영화를 연상시킨다. 미국 대통령 선거전의 열기 속에서 NASA에 대한 야당 후보의 예산 공방을 만회하기 위해서 국가정찰국(NRO)의 주도로 외계의 생물체 화석을 지닌 유성을 조작하고, 야당 대통령 후보의 딸이자 국가정찰국의 요원인 여주인공 레이첼 섹스턴이 우여곡절 끝에 진실을 밝혀낸다는 줄거리는 가히 통속적이다.

독자의 선입견과 선지식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도입부, 문제의 요점과 지속적인 사건전개 마저 점치기 어렵게 만드는 줄거리의 혼재, 독자의 사건들에 대한 몰입과 거리두기를 적절하게 조정하기 위해 고안되거나 소개되어지는 신기술, 사건의 중심에 서있는 전문직 여성(레이첼 섹스턴 뿐만 아니라 가브리엘 애쉬의 경우에도)의 ‘올바른’ 도덕성과 위선적인 이데올로기의 대립, 주인공의 위험천만한 모험과 우연성에 근거한 문제 해결, 항시 원칙적인 도덕론자인 최고 정책 결정권자의 현명한 선택에 의한 해피엔딩, 아마도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서 작가는 가장 미국적인 현실인식과 미국식의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보여주고자 하는 듯하다.

시스템에 위해적인 부류는 외부에 있지 않고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인과 시스템의 도덕적 재생산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과잉 반응하는 정보책임자와 정책보좌관들의 모습에서 시스템의 지속적인 업그레이드에 반하는 적대적 세력을 읽어내는 것은 냉전시대의 종말로 인해 어찌 할 수 없는 미국적 선택인 듯하다. 문학사전에 따르자면 통속적인 문학은 대개는 사랑, 모험, 전쟁, 범죄, 고향, 공상 과학적 허구와 같은 주제들이 진부하게, 다시 말해서 상투적인 방식으로 거듭해서 다뤄지는 작품을 일컫는다.

댄 브라운의 소설에서는 이러한 통속적인 요소들이 아낌없이 잘 반죽되어 감칠맛 나는 미국식 애플파이로 거듭나고 있어 보인다. 뉴 크리티시즘의 문학 정전 읽기에 반대하여 고급문학과 저급문학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유럽적 전통에 대한 아방가르드적 반란을 주도한 세대에게서 문학 교육을 받고 자란 댄 브라운에게 통속성에 대한 우려보다도 문학의 대중성에 대한 배려가 우선시 되는 것은 일견 당연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조작되어진 유성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특수부대의 공격으로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한 주인공 레이첼의 의식 속에는 다음과 같이 작가 자신의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가 드러나 보인다.

“정보세계에서 흔히 그렇듯, 더 많이 알수록 그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더 무서워지기 때문에 아는 게 오히려 병이다. 이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레이첼은 차라리 모르는 편이 더 행복했을 것이다.”(1권, 272쪽)

조작된 음모를 확인하자 델타포스에 의해서 기습당한 일행에게 처해진 실존적 상황은 남보다 더 많이 앎에서, 알지 말아야 할 사실에 대한 인식에서 유래한 것이다. 남보다 많이 아는 자의 고통은 항시 예술가의 몫이었지만 댄 브라운의 작가 정신은 그러한 문제의식을 교묘하게 회피하고 있어 보인다. 연이은 ‘도망쳐요!’라는 레이첼의 상징적인 외침이 지식의 미로를 벗어나 세상 속으로 도망치라는 파우스트적 외침과는 사뭇 달라 보이는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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