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노네 고만물상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4월
품절


한 시간 사이에 손님이 세 명 들어왔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옛날 안경을 사갔다. 나는 안경 같은 건 도수가 맞지 않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가게에서는 옛날 안경이 효자 상품이다.
"쓸모가 없는 물건이니까 사는 거야." 나카노 씨는 늘 말한다. 정말 그런 거에요? 내가 물었더니 나카노 씨는 실실 웃으면서, "히토미는, 쓸모 있는 게 좋은가?" 했다.
"그럼요, 좋죠."
내가 대답하자 나카노 씨는 흐음, 하고 콧바람을 내뿜더니 "쓸모 있는 접시, 쓸모 있는 선반, 쓸모 있는 사내!" 하고는, 리듬까지 타면서 묘한 대꾸를 하기에 나는 속으로 허걱, 했다.-.쪽

낡은 물건이라고 먼지를 켜켜이 덮어쓰고 있으면 안 된다는 게 나카노 씨의 지론이다. 옛날 물건일수록 청결하게. 하지만 또 너무 청결하면 못 쓰지. 쉽지 않아. 이거. 이 짓도 쉽지 않다고, 허허허.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나카노씨는 총채질을 한다.

=>낡은 물건을 방치하면 그냥 쓰레기가 되고 그렇다고 너무 깨끗하면 낡음이 주는 멋이 없으니까..-.쪽

방 정리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난 건, 가게 문을 닫기 직전이었다. 다케오는 이미 퇴근했다. 그날 잡힌 일정이 끝나면 언제나 다케오는 일찌감치 퇴근을 한다.
마사요 씨가 오자마자 나는 바통을 이어받은 마라톤 선수처럼 밖으로 튀어나갔다. 맨 아래 서랍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옷가지들과 잡지, CD들을 집어넣고 청소기를 전속력으로 돌렸다. 그게 끝나자마자 변기를 닦았다. 욕실 바닥과 욕조는 시간 관계상 그대로 두기로 하고 마지막으로 방을 한번 휘 둘러보니 너무 말끔하게 치워놓은 티가 나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잡지와 CD를 몇 개 서랍에서 꺼내 흩어놓았다.
다케오는 이번에도 비누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다. 나도 샤워를 해둘 걸 그랬나, 잠깐 생각하다가 퍼뜩 깨달았다. 사실 아까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었는데, 그랬다간 내가 무진장 속으로 벼르고 있었던 거처럼 보일 것 같아 그만두었던 것이다. 연애는 이래서 어렵다. 아니, 그보다 내가 연애를 하고 싶은 건지 아닌지, 그것을 가려내는 것이 우선 과제다.-.쪽

'은행'은, 예뻤다. 미인이라고 하기엔 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만, 화장기도 거의 없는 피부는 얼핏 보기에도 팽팽하고 희었다. 눈은 가늘게 위로 째지고 코는 날렵하게 빠졌다. 입술 언저리에 뭐라 표현할 길 없는 느낌이 있다. 전체적으로 청결한 느낌.
나카노 씨가 말한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안 내는 여자'가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일 줄이야. 나는 입을 헤벌린 채 뒤를 따라갔다. 나카노 씨와 '은행'은 곧장 걸어 나갔다. 러브호텔 앞에 다다르자 나카노 씨가 휘 한번 뒤를 돌았다. 뭔가를 살피는 눈초리로 거리를 둘러본다. 처음 나카노 씨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내가 나인줄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약 2초 후, 나카노 씨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카노 씨의 입술이 '히.토.미' 하는 모양새로 움직였다.
그대로 나카노 씨는 러브호텔 입구로 빨려 들어갔다. 본인이 들어가고 싶어 들어간 게 아니라,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말 그대로 빨려 들어가듯이. '은행'도 함께 빨려 들어갔다. 바로 저것이 '능숙하다'는 거구나, 나는 감탄했다.-.쪽

근데, 사키코라는 분……. 나는, 싫지 않던데요? 다케오가 말했다.
나도 사키코 씨는 싫지 않다. 물론 나카노 씨도 난 싫어하지 않는다. 싫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많이 있다. 그 가운데 '좋다'에 가까운 '싫지 않은 사람'이 어느 정도 있고, 반대로 '싫다'에 가까운 '싫지는 않은 사람'이 어느 정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 걸까, 나는 이런 생각하다가 다케오의 손을 살짝 잡았다. 다케오는 그냥 멀뚱히 있었다.-.쪽

9월 들어 선선해진 날씨가, 10월을 얼마 앞두고 갑자기 한여름 무더위로 돌아섰다. 나카노 고만물상의 에어컨은 거의 탱크만한 덩치의 구식이라 전원을 켜면 소음 또한 엄청나다.
이 에어컨 말이야, 이거 분명히 암컷이야. 나카노 씨가 언젠가 말한 적이 있다. 아니, 고분고분 얌전히 있다가 느닷없이, 화를 발칵 낸단 말씀이지. 그 다음부턴, 또 정신없이 쨍쨍거리거든. 그리고 또 퍼부을 만큼 퍼부었다 싶으면, 사악 잠잠해져. 그래서 이제 끝났나 하잖아? 근데 문제는, 이게 또 아주, 예고 없이, 와락 덤벼든다 이거야.
나카노 씨의 그 말을 듣고 다케오는 웃었다. '나체의 마하' 사건이 있기 전이었기 때문에 나도 옆에서 깔깔 같이 웃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에어컨이 기다렸단 듯이 굉음을 내서, 우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던 적이 있다.

=>꽤 나카노씨는 비유를 잘 하는것 같네요.-.쪽

이놈의 휴대폰, 꼴도 보기 싫어!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 따위 물건을 발명한 걸까. 어떤 장소,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통화 가능한 전화라는 건, 연애하는 데 있어서 -원만히 진행되는 연애든 삐걱거리는 연애든-암적인 존재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 휴대폰이 생겨서 편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기다리는 미덕을 잃어버린것 같아요.-.쪽

마사요 씨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젊을때는 상대방을 몰아세웠다. 30대 때도 그랬다. 40대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했다. 자기 잘못이든 상대방의 잘못이든, 무조건 상대 탓을 하고 따졌다. 상대와의 관계가 연인 사이든, 그냥 알고 지내던 사이든, 문제가 생겼을 땐 언제나 그랬다.
하지만 오십 고개를 넘고부터, 생각의 차이나 오해나 언쟁이 생겼을 때, 예전처럼 간단히 상대방을 몰아세울 수 없게 됐다.

=>나이가 들어서 관대해지는 것이 아니라 50대가 되니 죽음 때문에 상대방을 몰아세울수 없다네요. 종종 신랑가 다투다가 제가 나쁜말을 하면 신랑이 하던 말인데 신랑 너무 늙은건가?? ^^;;-.쪽

나카노 씨는 요즘 들어 좀 더 야위엇다. 사키코 씨가 전격적으로 이별을 통고했다는 이야기는 얼마 전 마사요 씨한테 들었다. 남자든 여자든, 늙은이든 젊은이든, 사랑이 끝나면 모두들 야위는 건가, 나는 잠깐 생각했다.

=>야윈다는것이 아마도 다른이들에 가잔 눈에 띄게 하는 것 같아요. 아마도 위로를 받고 싶은것이 아닐런지...-.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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