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시대, 다른 역할모델 제시하고 싶었다"

[오마이뉴스 김대홍 기자] 최근 보건복지부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료급여 수급권자 수는 약 176만여 명. 진료비는 지난해 3조2천여억 원 수준이었다. 지금은 의료보험이 당연시되고 있지만, 불과 40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 의료보험이란 것은 없었다. 1968년 민간 차원에서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이 만들어진 뒤 한참 지나서야 정부는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했다.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을 만든 사람은 성산 장기려 박사. 그는 한국전쟁 뒤 변변한 의료기관 하나 없을 때 무료 진료소를 차려 운영하며 평생을 사회봉사에 몸을 던진 사람이다. 큰 병원 원장이었지만 1995년 세상을 떠날 때 그의 통장에 있었던 돈은 단 1천만 원. 그마저도 간병인에게 주고 떠날 정도로 그는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게다가 타의에 의해 병원을 떠나야 할 일이 생겼을 때 말없이 물러났고, 그곳에서 다시 불렀을 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찾아가 환자를 돌봤다. 환자치료를 위해선 자신의 모든 것이 송두리째 사라져도 군말 한 번 할 줄 몰랐다. 가난했지만 항상 베풀고자 노력했던 그의 삶은 국민총생산(GDP) 세계 10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약자에 인색한 요즘 우리 사회와 대비된다.

▲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를 펴낸 김은식 기자.
ⓒ2006 심은식
그래서일까 때맞춰 <장기려, 우리 곁에 살다 간 성자>라는 책이 나왔다. 지은이는 김은식. <오마이뉴스>에 '맛있는 추억'을 연재해 큰 인기를 끌었던 시민기자다.

그는 이 책을 쓴 의도에 대해 "'성공'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된 요즘, 성공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또 다른 역할 모델을 제시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돈과 명예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주고 싶었다는 뜻이다.

또한 대형화되고 있는 우리나라 교회에 대해서도 그는 의문을 표시한다. 무교회 운동을 펼쳤던 함석헌과 교류하고 교회 없이 선교활동을 펼친 장기려를 통해서다. 저자는 '종들의 모임'이라고 이름붙인 정체불명의 단체를 자세히 소개하며 장기려가 바란 교회운동을 소개하고 있다.

다음은 지난 4월 말 저자와 종로에서 만나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 왜 갑자기 '장기려'를 쓰게 됐나. 요즘 화제가 된 인물도 아닌데.

"2004년 <우리교육>에 '예인산책'이란 시리즈를 진행했었다. 한대수·공옥진·유진규·오세영·한돌·김동원 등 우리시대 예술가들을 다룬 인터뷰 글이다. 그 글을 눈여겨 본 출판사 '봄나무' 사장이 장기려 전기를 제의했다. 자세히는 몰랐지만 호기심을 갖고 있던 인물이라 한 번 해보겠다고 했다."

- 이 책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시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장기려 박사의 나이 40세 때다. 보통 다른 책의 경우 어릴 때 비범했다는 내용에서부터 시작한다. 일부러 차별화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맞다. 전기라고 하면 너무 상투적이다. 태어날 때 용꿈을 꿨고, 비범했고, 어른들을 놀라게 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원래 착했다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사회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했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피난길 부분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다."

 
▲ 이 책을 쓴 의도에 대해 "'성공'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된 요즘, 성공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또 다른 역할 모델을 제시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2006 심은식
- 장기려 박사는 재산을 한 푼도 모으지 않았다. 막사이사이상을 탄 뒤에는 모든 수상식 참석을 거부할 정도로 명예에도 관심이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욕심이 없을 수 있나.

"그가 북쪽에 가족들을 두고 온 사람이란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가 만약 명예 등에 욕심을 부려 남쪽 정부에 기울었다면 북쪽 가족들이 성치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가족들을 생각해 북쪽에 기울었다면 역시 자신이 위험했을 것이다. 모든 욕심을 버리는 것이 자신과 북의 가족들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 너무 위인으로 띄운 느낌이다. 어떻게 사람이 흠이 하나도 없을 수 있나.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면서.

"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여러 각도에서 접근했다. 그래서 찾아낸 게 행려병자들을 병원에 자주 데리고 와서 병원 식구들이 가끔 눈살을 찌푸렸다는 것 정도다."

- 그는 사회를 위해서 일했지만 가족들은 무척 서운해 했지 않나. 거의 아들을 돌보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그는 아들 한 명을 데리고 남으로 내려왔다. 나중에 아들이 결혼한 뒤에도 아들 부부에게 큰 관심을 쏟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남쪽에 있는 자식 생각하면 북쪽 가족 생각났을 것이다. 북쪽 아들에게 못한 것 남쪽 아들에게 두 배로 잘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는 그렇게 못했다. 게다가 북쪽이 못산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으니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 억울한 옥살이를 많이 하지 않았나. 술김에라도 정부나 누군가를 비방했을 것 같은데.

"그 사람의 특성인 것 같다. 그래서 '바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재산을 챙길 줄도 모르고 싸움을 할 줄도 몰랐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언젠가 의료사고가 일어난 적이 있다. 사실 은폐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는 무척 미안해하면서 생활비를 계속 보탰다. 나중에 집도 얻어줬다. 게다가 순진할 정도로 솔직했던 사람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동급생 남자 친구에게 동성애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70년대는 성적으로 지금보다 엄격했고, 속한 교회도 보수 교단이라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일간지에 기고했다."

장기려는 바보, 그러나 할 말 하는 바보

- 싸움을 회피한 것은 비겁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나. 상처입기를 두려워하는….

"그렇진 않다. 자신이 손해 보는 일에 대해선 싸움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필요할 땐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문익환 목사가 방북했을 때 종교계 인물 중에서는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두둔했던 게 대표적인 예다."

- 그는 '바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한 상인과의 대화를 보면 몰랐던 바보는 아닌 듯하다. 물건값을 흥정하는 상인에게 제 값을 준 뒤, 의아해하는 직원에게 "그래야 믿는 사회가 된다"라고 한 것을 보면….

"실제 바보는 아니었다. 이런 예가 있다. 지금 양산 삼성병원 이사장을 지낸 손동길씨에게 장기려 박사가 '너는 돈 있어야 된다. 돈 없으면 불쌍해진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한 말이 부산이 항구도시라서 물류가 중요하다. 물이 찰랑찰랑 들어오는 땅을 사놓으면 돈이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래서 손동길씨가 다음날 자전거 타고 가서 산 땅이 지금의 삼성병원 자리다. 그 땅이 몇 년 사이 100배가 뛰어 100억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그는 북한 최초의 박사이자 김일성 주치의를 지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자발적 남하했다는 점은 뭔가 의심스럽다. 정확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 점은 참 확인하기 힘들다. 그에 대해서 추측할 수 있는 말을 한 적도 없다. 아마 북한에 가족이 있기 때문에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누군가는(정보기관) 계속 그를 '빨갱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성공 패러다임 대신 베푸는 패러다임 필요하다

- 박사의 뜻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나.

 
ⓒ2006 심은식
"그가 세웠던 청십자병원이나 복음병원은 매각되거나 부도났다. 경영상태가 좋지 않아 못 가진 사람들에게 의료혜택을 베풀기는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의료생협이 그의 뜻을 이어받고 있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지만, 그의 뜻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 종들의 모임에 대해서 궁금하다. 책 내용을 보면 무교회주의자들로 보이는데, 도대체 어떤 집단인가.

"무교회주의자인들인 것은 맞다. 그들은 교회나 십자가를 세우지 않았다. 모임 이름을 따로 만들지도 않고, 교세 확장을 하지도 않았다. 그들에 대해 장기려 박사도 처음엔 이단시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들의 삶에 감화돼 세례를 받았다. 사실 성경에도 교회를 짓고 십자가를 세우라는 것은 나오지 않지 않나."

- 종들의 모임 회원은 만나봤나

"선교사들을 만나지 못했다. 단 손동길 선생이 그곳 회원이다. 그들에 대한 일화는 들었다. 그들은 장기려 박사 장례식 때도 부담주지 않기 위해 도시락 싸갖고 와서 먹고, 멀찍이서 행사를 바라보다가 갔다고 하더라."

- 이 책은 한 인물의 전기다. 그러나 장기려 박사가 역할 모델이 되기는 힘들다고 느꼈다. 본받기에 그는 너무나 완벽하고 높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나는 안돼'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역할 모델을 이렇게 생각한다. 꼭 따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런 사람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 나는 이순신을 존경하는 우리나라와 장기려를 존경하는 우리나라의 미래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이순신은 수십 년간 존경하는 인물 1위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들은 모두 구국의 영웅들이다. 강감찬 을지문덕 이순신 등. 아니면 비천한 신분에서 신분이 상승한 사람들이거나…. 그들은 온갖 역경을 이기고 대단한 자리에 오른 인물들이다. 나는 그런 '성공 패러다임' 대신 베푸는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순신은 훌륭한 인물이지만, 그 인기가 과도하다. 이순신의 압도적인 지지율이 좀 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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