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민족·다종교·다문화의 나라

- 유고슬라비아 -

김상헌(한국외대 유고어과 강사

 

1. 다민족성

지금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SFRJ, 이하 '구(舊) 유고연방'으로 칭함)만큼 하나의 국가라는 틀 안에 다양한 민족과 다양한 종교,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던 나라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아메리카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과 같은 유사한 국가형태가 있기는 하지만, 구 유고연방과 아메리카합중국의 가장 큰 차이는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개별적 주체들'이 하나의 전체로써의 '다양성'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점, 그리고 그러한 '다양성'이 '개별적 주체들'을 동일한 조건으로 대응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서 극명한 차이점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메리카합중국의 경우에는 개별적 주체들과 다양성간의 관계가 비교적 원활한 것이었다면, 구 유고연방은 그렇지 못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구 유고연방이 현재의 국가형태로 해체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주요한 원인은, 각각의 공화국들이 갖고 있는 개별적인 특성과 이들이 '유고슬라비아'라는 국명으로 합체했을 때 나타나게 되는 전체적인 하나로써의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발칸반도 지역의 여섯 개 공화국(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은 '유고슬라비아(Yugoslavia, '남슬라브인의 나라'라는 의미)'라는 이름으로 연방을 구성하긴 했지만, 이는 그 시작부터가 인위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이렇게 결합된 구 유고연방의 민족들은 남슬라브어 계통에 속하는 비교적 유사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엄연히 구 유고연방에 속해 있는 각 공화국들은 나름대로의 민족적 정체성과 서로 다른 개별적 역사경험들을 지니고 있었다. '남슬라브 민족 공동의 국가건설'이라는 목표 하에 요시프 브로즈 티토(Josip Broz Tito)에 의해 주도된 그와 같은 인위적인 민족결합은, 어찌 보면 그의 사후(1980년 5월 4일)에 벌어지게 되는 처절한 내전과 각 민족들의 독립의지를 낳게 하는 자연스러운 전제였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제는 엄연한 독립국가인 슬로베니아 공화국, 크로아티아 공화국,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민족구성은 각각 약 91%, 약 80%, 약 65%로 해당 민족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국가연합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벌어진 보스니아내전은, 사회주의 정권하에서 연방제가 실시될 때 다른 공화국들이 다수민족을 기초로 하여 성립된 반면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의 경우에는 '보스니아(Bosnia)'와 '헤르쩨고비나(Herzegovina)'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공화국이 구성되었다는 데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즉, 민족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여타 공화국들과는 달리,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의 경우에는 슬라브계 이슬람교도가 약 38%, 세르비아계가 약 40%, 크로아티아계가 약 22%를 차지함으로써 특정한 민족을 중심으로 한 구심점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2. 다종교성

구 유고연방에 속해 있던 민족들은 남슬라브 민족이라는 커다란 민족갈래 분류에 있어서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고, 또한 언어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종교적인 관점에서는 결코 화합할 수 없는 이질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슬로베니아 공화국과 크로아티아 공화국의 주요한 종교는 로마 가톨릭인 반면, 마케도니아 공화국,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국가연합,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 공화국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동방정교의 신자들이다. 또한 약 500년 동안의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로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 지역에는 다수의 슬라브계 이슬람교도가 거주하고 있다.

395년 서로마와 동로마로 해체된 로마제국은 구 유고연방의 공화국들을 종교적으로 양분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민족적 대립의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구 유고연방을 종교적으로 살펴보면,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 공화국이 서로마제국(로마 가톨릭)과 동로마제국(동방정교)의 경계가 되는 셈이다.

중세보편종교의 기본적인 사상은 현세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의 민간신앙에서는 다른 세계에 대한 관념이 존재하면서도 현세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중세의 종교는 현세를 부정하고 오히려 내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렇게 로마 가톨릭, 동방정교, 이슬람과 같은 중세보편종교들은 구 유고연방 지역에서 기독교화 혹은 이슬람화 될 때까지 민중들에 의해 믿어졌던 민간신앙들을 적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 변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민중들의 삶 속에 여전히 다양한 민간신앙적인 요소가 남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중세보편종교 이전부터 행해졌던 세시풍속이나 주술적 행위들에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의 관념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원주민은 일리리아 민족으로, 이미 기원전 3세기에 해안지역에서는 로마와, 내륙지역에서는 켈트족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7세기에 슬라브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해 왔지만, 사회·정치적인 통일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기원후 9세기경에 '크로아티아(Hrvatska)'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문헌상에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미 이 지역은 7-9세기에 걸쳐 북부지역은 프랑크왕국, 동부지역은 동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925년 크로아티아의 토미슬라브(Tomislav) 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비로소 크로아티아의 통일이 이룩되었고,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기원후 6세기경에 사바(Sava) 강 유역을 중심으로 남슬라브 민족의 하나인 슬로베니아 민족이 발칸반도에 정착하였으며, 이들은 627년 슬로베니아 왕국을 건설하였다. 이들은 프랑크왕국 지배 하에서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서유럽문화권에 편입되게 되었다. 이후 슬로베니아는 10세기경에는 신성로마제국, 14세기에는 합스부르크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지배 하에 있던 슬로베니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 유고연방의 한 공화국을 구성하게 된다.

세르비아 지역 역시 원래 일리리아 민족의 영토였지만, 6∼7세기에 슬라브 민족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했다. 9세기경에는 로마의 가톨릭교회콘스탄티노플정교회 사이에서 고민했던 세르비아는, 9-10세기경에 불가리아중세왕국에 그리고 11-12세기경에는 비잔틴 제국의 통치를 받았고, 1219년 성(聖) 사바(Sv. Sava)가 세르비아의 독립 대주교가 된 이후 비로소 세르비아는 동방정교회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교회로 정리되었다.

1389년 코소보에서 세르비아와 불가리아 연합군이 오스만 투르크 군에게 대패한 것을 계기로 약 500여년에 이르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된다. 하지만 오스만 투르크에 의한 오랜 통치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 민족은 동방정교를 중심으로 한 민족적 정체성을 잃지 않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믿음과 정신을 잘 보존하고 있다.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 지역은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 세르비아와 마찬가지로 일리리아 민족의 영토였으나, 로마제국에 정복당한 이후에 이 지역의 대부분은 달마치아의 속주로 편입되었다. 보스니아 지역과 헤르쩨고비나 지역은 15세기 말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병합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많은 보스니아인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였다. 16-17세기를 걸치며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 지역은 오스만 투르크, 합스부르그, 베네치아 공화국의 대결의 장소로 변모하였으며, 1992년부터 1995년까지 지속된 보스니아내전은 그러한 대결의 연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구 유고연방을 구성했던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지역적으로는 고대 알렉산더 대왕이 통치했던 왕국의 일부에 속하지만, 현재 이 지역에 거주하는 마케도니아 민족은 그리스계통이 아니라 6-7세기경에 이 지역으로 이주한 남슬라브 민족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된 이후, 동로마제국의 지배 하에 있을 당시에 이곳의 민중들은 동방정교로 개종하였다. 9세기경에는 불가리아왕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11세기경에는 다시 비잔틴제국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이후 중세시대에 들어와서는 불가리아왕국과 세르비아중세왕국의 지배를 번갈아가며 받았고, 1355년 오스만 투르크 군대에 정복되어 약 500여년이 넘는 기간동안 이민족의 영향권 하에 있어야만 했다.

3. 다문화성

다민족성과 다종교성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구 유고연방은 '사회주의'라는 하나의 이념과 체제 하에 각기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는 수많은 민족들을 하나로 묶어놓았다. 하지만 1980년 5월 4일 대통령 티토의 사망 이후에, 그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독일이 통일되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해체되는 등의 사회적 변혁 속에서 1990년대 이후에 구 유고연방의 각 민족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한 노력들은 각 공화국들의 독립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개별적인 국가로써의 독립을 이룬 이후에는 자신들만의 문화적 정체성 찾기에도 범민족적·범정부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문화라는 용어는 라틴어 어휘인 'cultura'에서 파생한 'culture'를 그대로 번역한 말로써, 본래는 '경작'이나 '재배'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그것이 나중에는 '교양'이나 '예술' 등의 다양한 의미로 확대되었다.

영국의 인류학자 타일러의 저서 "Primitive Culture"에 따르면, 문화란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이다. 이들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 구 유고연방에서 가장 두르러진 특징을 보이는 것이 바로 종교이다. 더불어 어떤 민족을 문화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종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것이 서유럽이든 동유럽이든, 유럽에 속해 있는 문명권에서는 종교의 역할이 사회적·문화적 특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해당 민족의 문화적 특질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각 종교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파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구 유고연방에 속해 있는 국가들 가운데, 로마 가톨릭을 국교로 하는 슬로베니아 공화국과 크로아티아 공화국은 서유럽문명권에 속해 있으면서 이들 문화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았던 반면, 동방정교를 국교로 삼으며 동로마제국의 영향권 하에 있었던 세르비아 공화국, 몬테네그로 공화국,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종교수용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비잔틴문화권을 벗어날 수 없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또한 문화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 가운데 '언어'가 갖고 있는 중요성을 간과하기는 어렵다. 언어는 외적인 영향들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을 거치며 상징화를 통해 민중들 사이에서 학습되고 전달된다는 특징을 보인다. 구 유고연방 각 공화국들의 경우처럼, 수세기에 걸쳐 외세의 지배 하에 있었던 민족들이 자신들만의 언어를 지켜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구 유고연방의 각 공화국 민족들은 현재 고유한 언어문화를 이루고 있음을 볼 때, 이들 민족들이 지니고 있는 언어문화적인 저력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오랜 세월의 이민족 지배와 유럽권이라는 지역적인 특성으로 인해 현지어에 적지 않은 외래어가 포함되어 있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추상적인 개념의 언어문화 이외에 물질문화의 측면에서도 구 유고연방의 각 공화국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전통을 지켜내고 있다. 추상적인 것이든 혹은 물질적인 것이든, 개별 민족의 문화를 구성하는 이러한 모든 요소들은 독자적인 기능과 작용을 가지면서 내부적으로는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구조적·기능적으로도 통합적인 전체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인류학자인 크로버는 문화를 지역이나 집단에 따라 특유한 성격을 띠고 있으며, 지역적인 분포로 보아 비슷한 문화패턴을 지닌 것을 '문화영역' 또는 '문화권'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러한 패턴들 가운데 어느 정도까지 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을 '민족성'이나 '국민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이질성 내지 독자성을 전제로 하는 패턴은 장기간에 걸쳐 통합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외세에 지배에 쉽게 노출되어 있었던 구 유고연방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부의 여러 문화적 요소가 지니고 있는 상관관계에 어떤 모순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확대되면, 그러한 통합성은 쉽게 무너지고 변화하게 마련이며, 또 다른 새로운 통합형태가 형성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구 유고연방 각 공화국의 문화의 양상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문화적 요소들이 외부 요소들에 의해 도전받고, 확대되거나 다소간의 변형을 이루기는 했지만, 전체적인 통합성의 형태는 구조적으로 변화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구 유고연방에 속해 있는 각 민족이 진고 있는 또 하나의 문화적 저력이라 할 수 있다.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지니는 '민족성' 내지 '국민성'도 보다 커다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살펴보면 변화하게 마련이다. 문화적 양상이 쉽게 변화하기 어려운 것이라고는 할지라도, 물질적인 여러 문화적 요소들의 변화는 지각할 수 있는 반면에 의식과 관련된 문화적 요소들은 우리가 쉽게 변화의 정도나 양상을 깨닫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구 유고연방을 구성했었던 각 공화국들을 종교적인 구분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그 차이가 현저함을 알 수 있다. 즉 슬로베니아 공화국이나 크로아티아 공화국 같은 로마 가톨릭 문화권에 속해 있는 지역의 민족들이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민족성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세르비아 공화국이나 몬테네그로 공화국, 보스니아 공화국의 일부, 마케도니아 공화국 같은 동방정교 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의 민족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보다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성과 감성을 서양과 동양문화권의 차이점이라고 인정한다면, 구 유고연방이 위치해 있는 발칸반도는 서양과 동양문화권이 혼재해 있는 지역이라고 감히 정의할 수 있겠다.

구 유고연방, 특히 이 지역의 모든 종교문화들이 혼재해 있는 보스니아 공화국은 이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파악하는데 절대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보스니아 공화국은 여러 문화 분야에 걸쳐 종교적인 영향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이 바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보 안드리치라는 문학 작가이다.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인 '드리나 강의 다리'는 보스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산재해 있는 종교적 문제와 그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 서로 다른 문화란 평화로운 시기에는 서로 화합하고 도움내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지만, 일단 갈등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나면 그때부터는 반목과 적대적인 관계로 돌변하고 만다. 비록 인위적이기는 하지만 티토에 의해 이루어진 사회주의 시절에는 이 지역의 모든 민족들의 각기 다른 문화가 조화를 이루었다. 문화적 조화라는 것이 강제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러한 강제적인 문화적 조화는 결국 깨질 수밖에 없는 것임이 구 유고연방의 해체를 통해 증명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문화적인 다름이 구 유고연방을 해체로 이르게 한 유일한 원인은 아니었지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은 부인할 수 없다.

고대 일리리아 민족의 문화적 흔적으로부터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 모두를 포함), 합스부르크 제국과 슬라브 민족의 문화, 오스만 투르크의 영향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는 이루 헤아릴 수도 없는 외부의 문화적 영향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 바로 구 유고연방 지역이다.

내용출처 : [기타] http://segero.hufs.ac.kr/scripts/article_view.asp?JNAME=IANR&ISSUEID=133&SECID=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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