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기봉이
김서영 지음 / 황금나침반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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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인(ㅅ)자처럼
서로를 의지하고 있기에
쓰러지지 않고
삶의 대지 위에
굳건히 서 있을 수 있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이다.-.쪽

외딴집의 밤이 깊어간다. 내일도 기봉 씨는 엄마를 위해 달릴 것이다. 누군가 먹을 것을 싸주면 한달음에 달려와 엄마가 먼저 드시게 할 것이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제일 먼저 부모에게 드리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배워 알고 있다. 그러나 기봉 씨는 효도가 무엇인지 모른다. 좋은 음식은 부모 먼저 드려야 한다고 배운 적도 없다. 그저 엄마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좋을 뿐.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할 뿐. 그에게 효도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다.-.쪽

기봉씨는 방외적인 존재였다. 그의 존재는 실제보다 가볍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안타까워하고 가엾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들과 전혀 다른 존재, 일종의 이방인으로 여기고 있었다.-.쪽

마라톤을 시작하면서부터 기봉 씨는 달라졌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만큼 다른 사람들도 더 사랑하게 되었다. 뛰고 싶으면 뛰고 힘들면 멈추는 게 아니라 끝까지 최선을 다해 뛰면서, 그만 주저앉고 싶은 순간을 극복하고 스스로를 다잡으면서,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면서, 그의 내면에는 보이지 않는 변화가 일어났다. 내가 해냈다는 자부심. 내가 못할 게 무어냐는 자신감.
부쩍 기력을 잃어가는 엄마는 기봉 씨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실 것이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이다. 기봉 씨도 그걸 잘 안다. 하지만 마라톤이 있기에, 달릴 수 있기에, 살아갈 힘을 얻을 거였다. 그것은 기봉 씨를 마라톤의 길로 안내한 이장님의 속내이기도 했다.
참으로 특별했던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 기봉 씨는 이번에도 당당히 골인을 해 금의환향했다.-.쪽

좋은 집에서 살아본 적도, 부잣집에서 호강을 해본적도 없지만 기봉 씨는 그런 삶이 부럽지 않다. 그는 이미 충분히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는 단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소유하지 못한 것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봉 씨의 눈에는 있는 것만 보이지 없는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쪽

누렁이와 검둥이는 사람이고, 친구이다. 적어도 기봉씨에게는 그렇다. 사람도 동물도 똑같은 생명이기에 기봉 씨는 엄마에게도 강아지들에게도 다 같이 정성을 들인다. 그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는 일이 기쁘고 행복하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도, 기봉 씨는 알고 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것을. 생명을 가진 한 하찮은 존재란 없다는 것을.-.쪽

효성 지극한 예순 넘은 아들이 팔순 넘은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재롱을 부렸다는 옛이야기도 있지만, 기봉 씨야말로 진정한 효도를 실천하는 이 시대의 마지막 효자가 아닐지. 세상의 어느 똑똑하고 잘난 아들이 마흔이 넘은 나이에 어머니 앞에서 재롱을 부리겠는가.
늘 엄마의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운 돌덩이였던 장애인 아들, 그러나 지금 이 아들만큼 엄마를 아끼고 위하는 자식도 없다. 모자란 자식인 만큼 더 잘해주어야 하건만 그러지 못했고, 학교를 보내기는커녕 특수 교육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다. 제대로 입히지도, 넉넉히 먹이지도 못하고 잘한다는 칭찬 한 번 듣게 해준 적 없는 아들. 사람 구실은 제대로 하며 살까, 어디 가서 남의 손가락질이나 받는 것은 아닐까, 아들에 대해서라면 엄마는 모든 것이 다 근심이고 걱정이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지금 엄마를 행복하게 하고 있다. 아이의 천진함을 그대로 간직한 채, 어떻게든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재롱을 부리고 있다.-.쪽

기봉 씨는 종이컵에 담긴 어묵 국물을 후후 불어 식힌 다음 엄마에게 내밀고, 엄마는 아들이 건네준 국물을 조금씩 맛있게 드신다. 그래도 반이나 남았다. 엄마가 남긴 국물을 깨끗이 마시고 기봉 씨는 씩 웃는다. 호떡 하나, 어묵 국물 반 컵에 벌써 배가 부르다.
가난 속에도 행복은 있다. 아니, 어쩌면 가난하기 때문에 더 행복한지도 모른다. 오백 원짜리 호떡 하나에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 건 끼니도 잇기 어려울 만큼 가난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가는 어려운 형편인 건 마찬가지이지만 늘 배를 곯았던 옛날에 비하면 호떡도 사 먹을 수 있고 뼈다귀 해장국 외식도 할 수 있는 지금은 부자나 다름없다.

=>마음이 짠하네요.-.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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