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남북전쟁(1861∼1865)을 치르는 동안 정부 형태에 변화를 겪지 않았다. 헌법이 폐지되지도 않았고, 선거가 중단된 적도 없었다. 체제는 보존됐고, 연방은 살아남았다. 그러나 그밖의 다른 측면에서 미국은 새로운 나라가 됐다. 전쟁은 미국을 현대적으로 만들었다. 남부연합의 군사적 패배로 정치적 권력을 장악한 공화당은 산업자본주의를 보호하고 장려했다.
남북전쟁은 남부에서 노예제를 쓸어버렸지만, 북부의 지적문화도 대부분 쓸어버렸다. 전쟁은 지워지지 않는 정신적 상흔을 남겼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의견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상대방을 죽여도 좋다고 인정하지는 않는다. 남북전쟁은 그 시대의 신념과 가설을 의심하게 했다. 전쟁은 민주주의의 쇠퇴, 문화의 쇠퇴, 사상의 쇠퇴를 불러왔다. 미국이 새로운 문화를 계발하고, 사상을 찾아내고, 사고방식을 확립하는 데에는 거의 반세기가 걸렸다.
‘메타피지컬 클럽’은 미국이 새로운 사상을 찾아가는 과정을 짚어나간다. 현대의 미국을 가능케 한 사상은 ‘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실용주의)이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프래그머티즘은 남북전쟁 이후 미국인들의 생활 양식과 문제해결 방식에서 태동한 지극히 미국적인 철학이다.
지은이 루이스 메넌드는 뉴욕시립대 영문학 교수. 그는 프래그머티즘 혹은 실용주의라 불리게 된 미국의 정신이 그 선조의 삶으로부터 형성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미국의 사상을 현대로 옮겨놓는 데 다른 누구보다 큰 기여를 한 4명은 올리버 웬들 홈스, 윌리엄 제임스, 찰스 샌더스 퍼스, 존 듀이다.
남북전쟁의 영웅이자 진보적 연방대법관이었던 올리버 웬들 홈스, 소설가 헨리 제임스의 형이자 젊은 시절 홈스의 절친한 친구였던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논리학자·과학자이자 기호학의 창시자 찰스 샌더스 퍼스는 1872년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비공식 토론 모임을 가졌다. 이른바 ‘메타피지컬 클럽(Metaphysical Club)’이다. 고작 9개월 정도 지속된 모임이지만, 여기서 프래그머티즘이 태어났다. 여기에 철학자이자 교육학자인 존 듀이의 연구가 덧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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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피지컬 클럽/루이스 메넌드 지음/정주연 옮김/민음사/2만2000원 |
프래그머티즘은 관념적 진리 추구에 몰두해온 유럽 철학의 전통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인간 이성의 상대성, 우연성,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려 했다. 사상과 신념을 신성한 제단에서 세속의 세계로 끌어내렸다. 전쟁 속에서 싹튼 프래그머티즘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대 미국의 법, 교육, 사회, 예술과 종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책은 사상의 형성을 통해 미국 근현대사를 해석한다. 네 주인공의 삶의 궤적을 따르면서 그 안에서 전쟁과 정치, 과학과 철학, 종교와 교육, 인종 문제와 노동운동 등 개별 주제를 짜맞춰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