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정재숙] 고바우
김성환의 편편상
김성환 글.그림,
인디북, 252쪽, 8500원
큼직한 코, 한 가닥 솟은 머리카락, 안경 걸친 네모난 민머리의 인물로 요약되는 '고바우'는 반백 년 세월을 한국인과 함께 한 시사만화의 주인공이다. 1950년 등장해 2000년 퇴장할 때까지 '고바우'는 우리나라 최장수 시사만화로 작가 김성환(74.한국시사만화가회 명예회장)씨의 분신 구실을 했다. '고바우'는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김씨의 대변인이자 서민의 친구였다.
그가 쓰고 그린 이 책은 '편편상(片片想)'이라 제목 그대로 역사의 조각, 생각의 단편 모음이다. '고바우' 영감이 그랬듯 시시콜콜하면서도 삶의 진국이 밴 일상사를 구수한 이야기체로 풀어놓았다. 작가는 "잠이 안 올 때 듬성듬성 읽다가 잠들면서 '그런 일도 있었나?' 하고 가볍게 넘겨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고 썼다. 인간사의 뒤안길 얘기, 정사(正史)보다는 야사(野史)에 가까운 일화가 소재지만 읽고 나면 뒤통수를 치는 서른일곱 편의 중량감이 제법 묵직하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타임머신같은 역사 가로지르기도 재미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물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란 말이 있거니와 간신은 죽어서 '욕설'을 남기는 것일까?" 같은 대목에서 옹골찬 말 속의 뼈를 쪽쪽 빠는 맛이 일품이다. 주로 중국.일본.한국의 옛 이야기와 역사적 사실을 현재로 끌어와 교훈을 찾아내는 작가의 솜씨는 평소 그의 독서량과 생각의 품을 헤아리게 한다. 크고 작은, 다시 말하면 거시적인 시각과 미시적인 의외성이 서로 얽혀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그는 한 컷 만화로 다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