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인 베리씨는 결혼 19년째에 접어든 결혼생활에 매우 만족해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좋은 남편이자 아빠라는 자부심도 있었다. 아내 수가 수년간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남편의 친구인 샘과 침대에 누워 있었던 수가 베리에게 발각 된 건 이미 예정된 비극이었다. 샘의 아내 페티는 수의 친구이자 이웃이었고 두 가족은 아이들과 함께 자주 어울리던 사이였기에 사건은 베리에게 더욱 충격적이었다.
사연은 ‘철학’으로 카운슬링 하는 저자 루 메리노프 박사가 쓴 <철학 상담소>(북로드. 2006)에 실린 실화다. 저자는 그날 베리가 침실에 들어갔을 때 인간의 원시적일 열정을 좇았더라면 ‘총’으로 두 사람을 쏘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사법체계는 치정에 얽힌 범죄로 인정해 그에 대한 형량을 경감해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러나 베리는 아내와 친구의 끔찍한 배신행위에 대해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의 강한 도덕적 신념은 극도의 감정적 보복을 자제하도록 만들었고 정의에 대한 지적관념은 비폭력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도록 만들었다.
책은 배리를 위기상황에서 구한 것이 ‘기독교 생활철학’ 이었다고 지목한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의 죄 값을 치룰 것이며,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헛된 욕심에서 더 많은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신념덕분에 평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구조조정으로 해고까지 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찌 보면 배리의 상태는 ‘최악’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는 냉정을 잃지 않았고 약물에 의존하지도 않았다.
배리의 카운슬링을 맡았던 저자는 실존주의 중에서도 니체가 아니라 사르트르의 사상을 권했다. 저자는 “수와 샘이 같이 잠을 잤기 때문에 배리가 쇼크를 받았다”면 사르트르는 “수와 샘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배리도 자신의 감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할 것” 이라는 말을 건넸다.
조심했던 부분은 사르트르의 개념은 강력하고 힘을 북돋워주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전적인 희생물이라고 느끼는 사람의 경우에는 감정이 더 악화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생활에 영향을 미친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로 책임이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너무 많은 책임을 인정한다면 유아론자가 되고 너무 적은 책임 밖에 인정하지 않는다면 피해자학이라는 유해한 학설의 신봉자가 된다”
조심스러운 카운슬링이었던 만큼 사르트르의 사상을 조심스레 적용시켜나갔다. 배리는 유해한 관점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생활의 급격한 변화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이 책임이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 할 수 있었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는 보편화 된 ‘철학카운슬링’은 독일의 철학자 게르트 아벤바흐에 의해 1982년 본격화 됐다.
도덕적 딜레마, 직업적 갈등, 대인관계와 정체성의 혼돈, 상실감 등을 인간의 일상사로 간주하는 ‘철학 카운슬링’은 철학을 사용자(user)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철학 카운슬링은 학문이자, 기술로 간주된다.
고통 받는 현대인들의 이면을 치료해 주는 ‘혜안’이 돋보이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