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삼 기자 = 파격적 소재와 도발적 형식으로 현대 일본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120회 아쿠타가와 수상작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소설집 '센티멘털'(문학동네)이 출간됐다.
1975년 생으로 매우 젊은 작가층에 속하는 저자는, 교토 대학 법학부에 재학 중이던 1998년 투고한 소설 '일식'이 문예지 '신조'에 권두소설로 전재됐고, 이듬해 같은 작품으로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다.
대학 재학생이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것은 무라카미 류 이후 23년 만의 일로 당시 최연소 수상 기록이다. 해박한 지식과 의고체 문장으로 중세 유럽의 한 수도사가 겪는 신비한 체험을 그린 이 작품은 일본에서 40만부가 팔려나갔다.
소설집 첫머리에 실린 '청수'는 예전 계간 '문학동네'에 소개돼 국내 독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친숙한 작품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불가사의한 경험을 통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기억의 집적물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다.
'다카세가와'는 젊은 소설가와 여성 패션지 편집자가 교토의 러브호텔에서 보낸 하룻밤을 담은 이야기다. 성애 소설을 방불케 할 만큼 농밀한 성적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지만 그보다는 젊은 남녀의 섬세한 감정이 어떻게 점점 발전해가는가를 탁월하게 묘사했다.
나머지 두 작품 '추억'과 '얼음덩어리'는 형식상의 실험이 특히 두드러진다. '추억'은 언뜻 보기에 시어들을 드문드문 풀어 흩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토막난 말들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트릭을 품고 있다.
'얼음덩어리'는 페이지를 둘로 나눠 왼쪽에서는 현실 속에서 불륜 관계를 지속하는 삼십대 여자의 이야기가, 오른쪽에서는 자신을 낳고 죽은 어머니의 환영을 좇는 중학생 소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로 독립된 두 개의 이야기를 쓴 듯 싶지만 작가는 기막힌 솜씨로 두 이야기를 하나로 엮여내며 '인간 관계의 불확실성'을 이야기한다.
책의 원제는 '다카세가와'. '센티멘털'이라는 제목은 한국판 출간을 맞아 작가가 직접 뽑은 것으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In a sentimental mood'라는 재즈 명곡에서 따왔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하는 '2006 서울, 젊은 작가들'에 참가하기 위해 8일 서울을 방문하는 작가는 한국어판 발행을 기념해 9일 오후 6시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팬사인회를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