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평전 - 시대를 거역한 격정과 파란의 생애
허경진 지음 / 돌베개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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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는 여러 차례 사화(士禍)가 일어났다. 사화는 대개 정치ㆍ경제적으로 기득권을 잡고 있는 훈척파(勳戚派)와 그들의 부정과 부조리를 비판하는 사림(士林) 사이에 일어난 정치적 사건이다. 사림을 제거하기 위해서 정치적 사건을 일으킨 훈척파에서는 그 사건을 난(亂)으로 규정했지만, 일방적으로 당한 사림에서는 어진 선비들이 죄 없이 당한 화(禍)라고 주장했다. 사화는 역모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달랐기에, 정권이 바뀌면 억울하게 죽었던 사람들이 모두 복원되었다. 따라서 사림이 정치적으로 우세해진 선조 초반에 들어서야 '사화'라는 표현이 쓰였다.
김종직(金宗直) 일계가 유자광 중심의 훈구파에게 당한 무오사화(1498), 유자광이 연산군의 생모 윤씨의 폐비와 복위 사건을 기화로 일으켰던 갑자사화(1504), 지치주의(至治主義)를 내세우던 조광조(趙光祖) 일계가 훈구파 남곤과 심정에게 당한 기묘사화(1519), 인종의 외삼촌인 윤임이 대윤파 사림을 비호하다가 명종의 외삼촌인 윤원형의 소윤파에게 축출당한 을사사화(1545)가 모두 사림들의 패배로 끝났다.

=>허균이 살던시대-.쪽

장수를 고를 때에는 반드시 백성을 잘 다스리는 자를 써야만 한다. 백성을 다스리는 법과 병사를 다스리는 법도 참으로 같지 않거든, 하물며 백성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윗사람이나 잘 섬기는 사람을 장수로 뽑아서 무엇하랴. 그러므로 이런 자들이 한번 장수가 되었다가 난을 만나면 손발을 어떻게 놀려야 할지도 모른다. 적을 바라보기도 전에 먼저 무너지니, 모두가 이 모양이다.
아아! 이런 장수가 이런 군사를 거느리고 있으니 군사가 없다는 말이 옳은 것이요, 그러고도 이 나라가 나라 꼴을 하고 있는 것 또한 우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폐단을 고칠 수 있을까? 고려 때의 제도와 같게 하면 군사가 강해질 것이고, 장수를 잘 고르게 되어 나라가 나라답게 될 수가 있다.
그러나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국경에 오래 있었던 장수치고 사람들의 헐뜯음과 임금의 의심을 받지 않은 자가 드물다. 군사를 강하게 훈련시키고 아랫사람들을 잘 단속하며 군율을 엄하게 하되 위와 아래가 서로 친해서 적국이 두려워하던 장수라도, 한번 임금의 의심을 받게 되면 발을 돌릴 사이도 없이 몸은 죽음에 빠지고 따라서 나라도 위태롭게 된다.
이로써 본다면 병사를 잘 다스리고 장수들을 잘 거느려서 그 나라를 강하게 할 수 있는 자는 오로지 임금뿐이다.

허균은 결국 조선에 군사가 없는 것이 모두 임금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임금이 임금 노릇을 못하기에 장수를 믿지 못하고, 신임받지 못한 장수는 군사를 기르지 못한다. 임금이 재상을 믿지 못하기에 재상도 국력을 기르지 못한다. 임금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던 조선시대에 모든 책임을 임금에게 돌리는 글을 쓰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허균은 「병론」에서 그렇게 썼다. 어디 「병론」뿐이던가. 「학론」(學論)에서도 참다운 학자를 등용하여 경륜을 펼치게 하는 것이 임금의 책임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임금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했다-.쪽

허균은 자기 주장을 펼치기 위해 12편의 논(論)과 3편의 설(說)을 썼는데,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자는 오직 백성뿐이다"라는 구절로 「호민론」(豪民論)을 시작하여 이 글이 민중에 바탕을 두었음을 밝혔다.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자는 오직 백성뿐이다. 백성은 물이나 불, 범이나 표범보다도 더 두렵다. 그런데도 윗자리에 있는 자들은 백성들을 제멋대로 업신여기며 모질게 부려먹는다. 도대체 어째서 그러한가?

그는 백성의 힘을 크게 인정했는데, 모든 백성을 한 가지로 보지는 않았다. 평소에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는 항민(恒民), 불만을 느끼기는 하지만 힘이 없어서 원망이나 하는 원민(怨民), 다른 마음을 품고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엿보다가 때를 만나면 자기의 소원을 풀어보려는 호민(豪民), 이 세 가지 종류의 백성들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가장 두려운 자가 바로 호민이다. 잠자는 민중을 이끌고 나가는 지도자가 바로 호민인데, 그들이 앞장서면 항민과 원민도 따라나서기 때문이다.

이들 호민이야말로 크게 두려운 존재이다. 호민은 나라의 틈을 엿보다가 일이 이뤄질 만한 때를 노려서, 팔뚝을 걷어붙이고 밭이랑 위에서 한 차례 크게 소리를 외친다. 그러면 저 원민들이 소리만 듣고도 모여드는데, 함께 의논하지 않았어도 그들과 같은 소리를 외친다. 항민들도 또한 살길을 찾아, 어쩔 수 없이 호미자루와 창자루를 들고 따라와서 무도한 놈들을 죽인다. (줄임)
하늘이 사목(司牧)을 세운 까닭은 백성을 기르려고 했기 때문이지, 한 사람이 위에 앉아서 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 골짜기 같은 욕심이나 채우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즉 그러한 짓을 저지른 진나라나 한나라 이래의 나라들이 화를 입은 것은 마땅한 일이었지 불행한 일은 아니었다.-.쪽

허균은 또 「유재론」(遺才論)에서 "하늘이 재능 있는 사람을 내었는데, 사람이 이를 가문과 과거로 한정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하늘이 준 직분을 임금과 더불어 행하는 것이니, 재능이 없으면 안된다. 하늘이 인재를 내는 것은 본디 한 시대의 쓰임을 위해서이다.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귀한 집 자식이라고 해서 재주를 넉넉하게 주고, 천한 집 자식이라고 해서 인색하게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옛날의 어진 임금은 이런 것을 알고 인재를 더러는 초야에서 구했으며, 낮은 병졸 가운데서도 뽑았다. 더러는 싸움에 패하여 항복해 온 오랑캐 장수 가운데서도 발탁했으며, 도둑 가운데서 끌어올리거나 창고지기를 등용하기도 했다. 쓴 것이 다 알맞았고, 쓰임을 받은 자도 또한 자기의 재주를 각기 펼쳤다. 나라가 복을 받고 치적이 날로 융성케 된 것은 이러한 방법을 썼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같은 권리를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는 신분이 높은 사람을 발탁하는 것이 아니라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발탁해야 한다. 하늘이 인재를 쓰라고 세상에 내었는데, 신분이 낮다고 해서 쓰지 않는 것은 임금의 직무 유기이다. 땅이 넓고 사람이 많은 중국에서도 신분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발탁했기에 나라가 잘 되었는데, 땅도 좁고 사람도 적은 조선에서 그나마 신분에 따라 인재를 가리면 나라가 더욱 안되게 마련이다.-.쪽

우리나라는 땅덩이가 좁고 인재가 드물게 나서 예로부터 그것을 걱정했다. 우리 왕조에 들어와서는 인재 등용의 길이 더욱 좁아졌다. 대대로 명망 있는 집 자식이 아니면 높은 벼슬자리에 통할 수 없었고, 바위 구멍이나 초가집에 사는 선비는 비록 뛰어난 재주가 있다 하더라도 억울하게 등용되지 못했다.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하니, 비록 덕이 훌륭한 자라도 끝내 재상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하늘이 재주를 고르게 주었는데 이것을 문벌과 과거로써 제한하니, 인재가 모자라 늘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 넓은 세상에서 첩이 낳은 아들이라고 해서 어진 사람을 버리고, 어미가 다시 시집갔다고 해서 그 아들의 재주를 쓰지 않는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만이 그렇지를 못해서, 어미가 천하거나 다시 시집갔으면 그 자손은 모두 벼슬길에 끼이지 못했다.
변변치 않은 나라인 데다 양쪽 오랑캐의 사이에 끼여 있으니, 인재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쓰이지 못할까 걱정해도 오히려 나랏일이 제대로 될지 점칠 수 없다. 그런데 도리어 그 길을 막고는, "인재가 없다. 인재가 없어!"라고 탄식만 한다. 이것은 남쪽으로 가면서 수레를 북쪽으로 돌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웃 나라가 알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낱 아낙네가 원한을 품어도 하늘이 슬퍼해주는데 하물며 원망을 품은 사내와 홀어미가 나라의 반을 차지했으니, 화평한 기운을 이루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줄임)
하늘이 낳아준 것을 사람이 버리니, 이는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늘을 거스르면서도 하늘에 기도하여 명을 길게 누린 자는 아직까지 없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하늘의 순리를 받들어 행한다면, 크나큰 명을 또한 맞을 수 있을 것이다.-.쪽

광해군의 난정을 뒤엎고 인조반정이 성공한 뒤에 억울하게 죽은 이들이 모두 누명을 벗었건만, 허균에게는 역적이라는 이름이 늘 붙어다녔다. 성도 감춘 채, 균(筠)이라는 이름만으로 씌어왔다. 조선조 사회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그를 끝내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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