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행 - 사람의 숲을 거닐다
김정길 지음 / 돋을새김 / 2006년 4월
절판


"삼인행(三人行)." 『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말이다. 원래의 문장은 "三人行必有我師焉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로, 세 사람이 길을 같이 걸어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살펴 스스로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스승은 내게 가르침을 준 사람이다. 가르침에는 옳은 것, 본받을 만한 것도 있지만 그 반대로 옳지 않은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깨닫게 하는 반면교사(反面敎師)도 있다. 이렇게 보면 살아가면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스승이다.-.쪽

나는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만남'과 '선택'을 꼽는다.
우리 인생은 작든 크든 끊임없는 만남과 선택의 연속이다. 한 사람과의 만남으로 삶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는가 하면, 한 번의 선택이 인생을 산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바다로 이끌기도 한다.
내게도 그런 만남과 선택들이 많았다. 내게 큰 힘을 준 만남이 있는가 하면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긴 만남도 있었다. 어떤 만남은 내 생각을 바꾸어 놓았고, 또 어떤 만남은 내가 그 전까지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만남이든 내 삶을 여기까지 이끌어온 소중한 것들이었다.
2년 전, 나는 자신을 잊을 정도로 숨 가쁘게 돌아가던 공직에서 손을 놓았다. 오랜만에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생겼고, 난 그 여유를 충분히 누리고 싶었다. 지난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앞으로의 삶을 여유롭게 보낼 준비도 하고 싶었다.
내게는 그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 바로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었던 사람들의 삶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기도 했고,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을 엿보기도 했다.
그들의 삶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뛰어난 능력이나 대단한 업적이 아니라, 얼마나 자신의 삶에 충실했는가였다.

=>책 현실과 멀어지는 장소이지만 현실과 가까워지는 장소이기도 한 곳.-.쪽

세상에는 배워야 할 많은 학문과 지식이 있지만 사람의 삶만큼 깊은 깨우침과 감동을 주는 건 없는것 같다.-.쪽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알아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있어야 할 자리와 피해야 할 자리를 가릴 줄 알아야 한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자리였다 해도 자신이 참석함으로 해서 다른 사람의 판단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간혹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40대 이후에는 누구나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지만, 공인이라면 자신의 얼굴에 사회적 책임까지 덧붙여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많은 걸 배웠지만,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점이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처음부터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예 하지를 않고, 혹시 이야기 중에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게 될까봐 언론에서 요청하는 인터뷰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철저한 자기 관리와 절제가 아니면 유지하기 힘든 태도이다

=>안철수씨에 관한 이야기예요.-.쪽

이 부분에서 언젠가 들었던 테레사 수녀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떤 한국 사람이 테레사 수녀님이 일하시는 인도에 봉사를 하러 갔는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어찌나 불쌍한지 보자마자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그러자 테레사 수녀님이 그 사람을 조용히 불러 '당신은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는 것이다.
봉사하기 위해 멀리서 어렵게 온 사람을 '왜 돌아가라 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울 것 없어요. 당신 나라에도 이렇게 불쌍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답니다. 그들을 도우세요."
측은지심은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감정이지만 그런 감정에 너무 함몰되다 보면 아무 일도 못한다. 어떤 일을 시작하게 하는 것은 감ㅐ訣嗤?그 일을 현명하게 처리하는 능력은 이성적인 판단에서 나온다.-.쪽

구속 상태가 아니거나 정식으로 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을 경우에는, 얼마든지 자신의 의지대로 귀가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어떤 피의자가 검찰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집으로 가는 것을 표현할 때, 신문 기사 등에서 흔히 사용하는 '돌려보냈다', '귀가시키지 않았다', '귀가 조치했다' 등의 표현은 '귀가했다'가 되어야 한다는 걸 통해, 검찰의 권한과 피의자 권리의 범위를 명확히 한다.
피의자 수사는 임의수사이기 때문에, '제 발로' 들어가서 '자발적'으로 이야기하고 돌아가고 싶을 때 '마음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청에 들어가면 검사님께서 나가도 좋다고 허락하실 때까지는 함부로 검찰청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오해라는 뜻이다.
피곤하거나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이제 조사받기 귀찮아서 집에 가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나와도 되고, 그것마저 귀찮으면 아무 말 없이 그저 걸어 나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법을 공부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과연 일반인들 중에 이런 걸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저 검찰에서 하는 일이라면 군대명령처럼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역시 아는것이 힘이네요.-.쪽

사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은 아주 개인적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무심히 지나치는 일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아주 단순한 에피소드에서 다른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감동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감동이나 배움은 순전히 느끼고 배우는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내가 잘 깨닫지 못하는 잘못을 지적해주는 아내에게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가까운 친구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감동하고, 나이는 한참 어려도 성실하고 마음 씀씀이가 따뜻한 사람들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낀다.-.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