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해전사에 길이 남을 승리를 선사한 조선 수군의 주력함은 거북선이 아니라 노를 저으며 전투 수행이 동시에 가능한 `판옥선(板屋船)`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서울대 국사학과 문중양 교수는 최근 펴낸 책 <우리역사 과학기행>(동아시아. 2006)에서 "거북선은 덮개를 덮어 근접전에 강한 일본 수군을 막거나 전열을 흐트러 뜨리기 위해 돌격용으로 개조했을 수 있지만 막힌 공간에 무기들을 장착한 채 지휘하면서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기동성과 위력 면에서 판옥선에 비할 바가 못됐다"고 설명했다.

거북선은 판옥선을 간단히 개조해 만들 수 있지만 임진왜란 당시 3~4척만 제작했으며, 1555년(명종 10년) 종래의 한선을 개량해 2층구조로 만든 판옥선이 조선 수군의 주력함으로 명성을 날렸다는 것.

판옥선은 바닥에 평평한 선체 위에 그보다 폭넓은 갑판을 2층 구조로 만든 군선으로 중국과 일본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노 젓는 공간과 전투 공간이 상체 2층에 분리되어 있어 넓은 전투 공간을 확보한 판옥선은 대포와 같은 화약무기를 장착해 해전에서 가공할 만한 위력을 발휘했다. 이미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40년 전의 일이었다.

근접전에 강한 일본 수군은 기동성이 뛰어나고 막강한 대형화포를 장착한 판옥선에 접근도 하지 못하고 격침당하기 일쑤였다.

당시 군선들은 평선으로 갑판 위에 전투병과 비전투원인 노꾼이 함께 있어 전투효율이 떨어지는데 비해 판옥선은 격군(노꾼)을 판옥 내에 숨기고 전투병은 상장 위에서 적을 내려다 보며 공격할 수 있었다. 또 판옥선의 넓은 갑판은 대포를 설치하기 좋아 사정거리도 늘릴 수 있었다.

판옥선의 진가는 임진왜란 첫 해전인 옥포해전에서 발휘됐다. 충무공 이순신은 판옥선 28척과 협선 17척, 포작선(어선) 46척을 거느리고 출동해 8일 옥포만에서 단 1시간 만에 왜군 선단 26척을 격침시켰다. 같은 날 저녁 왜선 5척과 적진포에서 13척을 추가 격침시켰다.

5월 29일 제 2차 출동에선 23척의 전선(거북선 3척과 판옥선 20척)이 출격해 사천포에서 왜군의 층루선 12척과 왜성을 쌓고 있는 왜군 400명 섬멸했다. 또 당포해전에서 판옥선 만큼 큰 왜 층루선 9척, 중소선 12척을 격침시키고 왜장의 목을 베었다.

1, 2차 옥포해전 때 출동한 함대 구성만 보더라도 거북선 대신 판옥선이 임진왜란의 일등공신임을 부인할 수 없다.

문 교수는 "일제의 식민사관으로 인해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만이 부각되고, 막강 화력의 대형 화포로 무장한 판옥선단으로 위세를 떨쳤떤 조선 수군의 군사력이 일본 보다 높았던 사실이 감춰졌다"고 지적했다.

책은 판옥선과 거북선에 얽힌 역사적 진실 뿐 아니라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술, 17세기 이후 그려진 조선의 천하도, 석불사 석굴, 단순한 천문대 이상의 의미를 갖는 첨성대 등 한민족의 전통과학을 가장 한국적인 사상과 역사관의 패러다임으로 새롭게 해석해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저자인 문중양 교수는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출신으로 지난해 이례적으로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임용돼 화제가 된 `크로스오버 학자`이다.

(그림 = <각선도본>에 실린 판옥선) [북데일리 박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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