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이봉렬 기자] 옛날 이야기를 읽다 보면 여자가 주인공인 경우가 별로 없어. 약한 사람을 도와 주고, 나쁜 사람을 물리치는 힘과 용기를 가진 영웅의 역할은 대개 남자가 독차지 하지. 여자가 주인공일 때도 어려운 처지를 잘 견뎌내다가 결국 남자의 도움으로 행복하게 잘 살게 된다는 뻔한 이야기로 끝을 맺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 효녀 심청이나, 절개를 지킨 춘향이, 왕자와 결혼을 하는 것으로 고생을 벗어나는 콩쥐가 다 그런 경우야.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처럼 외국의 옛이야기도 별반 다르지 않아. 남자는 힘 세고 용감하며, 여자는 착하고 오래 참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 나왔으면 좋겠어.

 
▲ 책표지-긴머리 여자아이
ⓒ2006 청년사
그래서 아빠가 이번에는 여자가 주인공인 책을 골랐어. “강물처럼 찰랑이고, 샘물처럼 촉촉하고, 물방울처럼 반짝이는, 아주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 아이가 그 머리카락을 자르게 된 사연을 담은 <긴 머리 여자아이>라는 중국 먀오족의 설화야.

구름보다 더 높은 산꼭대기의 작은 마을에 긴 머리 여자아이가 살았어. 그 마을은 물이 아주 귀해서 아주 먼 강에서 물을 길어 썼어. 어느 날 여자아이는 들개에게 쫓기는 사슴을 구해줬는데, 그 사슴은 산도깨비의 아들이었어.

사슴은 여자아이에게 물이 솟아나는 바위를 알려 주었지. 여자아이는 기쁜 마음에 마을 사람들에게 샘을 알리고 싶었지만, 사슴은 그렇게 되면 산도깨비가 가만 두지 않을 거라며 혼자만 알고 있으라고 했어.

여자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물을 구하지 못해 고생을 하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샘이 있다는 걸 알려야 할까, 아니면 산도깨비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할까?

그 해에는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 강물마저 말라 버렸어. 할아버지 한 분은 어렵게 물을 길어 오다가 쏟아 버리는 바람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 여자아이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바랠 정도로 고민을 했어. 결국 소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샘이 있는 곳을 알려줬어.

▲ 힘겨워 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여자아이는 자기 희생을 결정하게 된다
ⓒ2006 청년사
그 일로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지만, 소녀는 산도깨비에게 잡혀 갔어. 화가 난 산도깨비는 여자아이를 “흐르는 물속에 눕히고 긴 머리카락이 영원히 물살에 씻기도록 만들어 버리겠다”고 했지.

여자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설마 이야기가 이렇게 슬프게 끝나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도 여자아이는 사슴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을로 내려 올 수 있었어. 강물엔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을 잘라 붙인 돌 인형이 누워 있게 되었지. 마을로 돌아 온 여자아이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물 걱정없이 행복하게 살았어. “여자아이 머리카락은 어떻게 됐냐고? 그야 물론 길고 탐스럽게 다시 잘 자랐지.”

긴 머리 여자아이에게 엄청난 힘이나 뛰어난 지혜가 있어서 마을 사람들에게 생명과 같은 물을 가져다 줄 수 있었던 게 아니야. 들개에게 쫓기는 사슴을 구해 준 것과 벌을 받게 될 줄을 알면서도 마을 사람들에게 샘이 있는 곳을 알려 준 걸 기억해 보렴. 여자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건 생명을 아끼는 마음과 나 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희생정신이었어.

희생이란 지금 당장은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다시 자란 긴 머리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처럼 결국은 더 크게 되돌려 받는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야. 우리 살면서 그런 경험 자주 할 수 있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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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06-05-01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 제목이 '거머리 여자'로 보였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