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무심결에 침을 뱉었다. 누군가 뛰어와 면봉으로 침을 찍어 재빠르게 사라진다. “뭐야! 별 미친놈 다 보겠네….” 며칠 뒤, 집으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죄송합니다. 당신은 알츠하이머와 조울증 등 발병 위험이 높은 것으로 조사돼 우리 회사 보험에 가입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법원에서 소환장도 날아 왔다. “친자 확인 소송이 접수됐으니, 법정에 출두하시기 바랍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컵에 묻은 침과 핏자국, 머리카락 등은 모두 DNA ‘지문’을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DNA 지문에는 잠재적 질병 위험은 물론, 동성애나 범죄 성향 등 개인적인 비밀이 가득하다. 이 때문에 자칫 자신도 모르게 유출된 DNA 정보가 개인의 정체성은 물론 사회적 유대관계까지 파괴할 수 있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간의 몸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혈액과 DNA, 장기, 생식물질 등은 개인 정보의 원천인 동시에 신약 개발과 질병 치료의 재료도 된다. 신체의 수요와 공급이 늘면서 계약과 보상 같은 상업 언어가 의학과 과학 분야 깊숙이 파고들었다. ‘돈’이 개입하면 ‘인간성’은 희색되기 마련. 이 책은 생명공학 시대에 나날이 커져가는 ‘인체 시장’ 실태를 파헤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법적·윤리적 문제에 경종을 울린다.

시장 형성은 병원과 연구소가 시작했다. 이들 기관은 오래전부터 환자와 신체, 유전 정보가 자본 원천임을 깨닫고 활용했다. 이 때문에 일부 환자는 자신도 모른 채 연구 대상이 됐다.

지난 30년간 많은 미국 산부인과 의사들이 수술을 받기 위해 찾아온 여성으로부터 동의도 받지 않은 채 난자를 채취했다. 피임약 개발 회사에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백혈병 환자는 의사로부터 수시로 골수와 피부, 정액 샘플 등을 채취당했는데, 의사는 여기서 추출한 특이한 화학물질로 특허를 출원했다.

일반인 역시 자기 몸이 금전적 자원임을 깨닫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피와 정액 등 재생 가능한 신체조직은 생계 유지 수단이 된 지 오래다. 혈액은 이미 지구상 가장 가치 있는 상품 중 하나. 석유가 배럴에 40달러에 팔릴 때 같은 양의 혈액 제품은 6만7000달러(약 6700만원)의 가치로 거래될 정도다. 혈액에 희귀 항체라도 있는 경우 그 피의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다.

신체는 이제 상품이다. 시장에 내놓고 특허가 출원되고 매매의 대상이 됐다. 사람의 몸은 ‘살아 있는 금광’으로 전락했다. 몸의 일부를 광물처럼 추출하고 작물처럼 수확하며 천연자원처럼 캐낸다. 치료 잠재력을 가진 세포와 배아, 조직 등은 냉동 은행에 저장되고 수집소에 맡겨진다.

문제는 신체가 상품으로 전락하면서 더 이상 그 존엄성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 인간은 실험용 ‘동물’로 취급되고 신체는 수집·거래되는 ‘물건’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전시된 아인슈타인의 뇌가 대표적인 예. 1955년 숨진 아인슈타인의 부검을 맡은 의사는 사전 동의도 없이 그의 뇌를 170여 조각으로 쪼개 병에 보관했고, 이는 현재 세계 각국에서 순회 전시되는 구경거리가 돼 버렸다.





인체시장/로리 앤드루스·도로시 넬킨 지음/김명진·김병수 옮김/궁리/1만3800원


‘인체 시장에 인간은 없다!’ 세계 곳곳에서 거래되는 출처 불명의 신체 기관은 심각한 문제다. 1999년 터키 대지진 때는 희생자 시체에서 훔쳐낸 장기가 이식용으로 대량 유통됐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묘지에서 파낸 뼈가 기름과 장식용 단추로 만들어진다. 서구에서도 여전히 장례식장이나 시체보관소에서 시체가 훼손되고 장기가 도난당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보고된다. 이제 불법으로 거래되는 장기와 신체는 그 시장 규모를 파악하기 조차 힘들 정도다.

과학·법률 전문가인 저자들이 다양한 사례와 실제 인터뷰를 통해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인체 시장의 실태는 충격적이다. 이들은 신체의 상업화를 막으려는 법정 소송과 입법례 등을 소개하고 보다 강력한 법적 규제가 요구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책과 대안을 내놓지는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강력하게 와 닿는다. “금이빨 대신에 가치 있는 효소나 호르몬 같은 것들을 뽑아가는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같은 사회가 도래할 수 있다.” 원제는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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