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황 측천무후’ ‘바둑 두는 여자’로 이름을 날린 중국계 프랑스 소설가 샨사(34)의 새 장편 ‘음모자들’(이상해 옮김·현대문학)이 출간됐다.

소설의 주인공은 미국 남자 CIA 요원과 중국 여자 첩보원이다. 영화깨나 본 독자는 ‘두 스파이가 서로 속고 속이다 결국 연애를 하겠군’ 하고 짐작할 것이다. 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낡았다고 몰아붙일 수 없는 이유는 두 스파이의 고뇌를 통해 미·중·불 삼국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암시하는 것은 물론 사랑, 소외감 등 개인적인 인간 감정까지 섬세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2004년 프랑스 뤽상부르 공원 옆의 아파트. 1989년 톈안먼 사태의 여혁명가 아야메이와 컴퓨터 엔지니어 조나단이 ‘우연히’ 이웃이 된다. 사실 둘의 정체는 중국과 미국에서 파견된 첩보원이다. 이제 평범한 아파트는 연막전과 공작이 벌어지는 전장이 된다. 여기에 아야메이에게 코가 꿰인 프랑스 속물 정치인이 가세하면서 ‘스리섬’ 정치 게임이 전개된다. 이해관계가 맞물린 세나라의 음모자들은 각자 모국의 이익을 위해 거짓을 연기한다. “진짜 세계는 어디 있을까. 조나단은 눈속임으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알고 있다.”(12쪽)

아야메이와 조나단은 고단수 술책으로 서로 공방전을 벌인다. 둘은 전략적으로 체온을 나누다가 서서히 상대에 대한 연민을 갖게 된다. 연민은 스파이에게 치명적이다. 이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임무에 충실한 듯 보이는 두 사람이 국가의 꼭두각시 노릇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조나단은 “난 미국을, 민주주의를 믿었어. (…) 난 우리를 이용하는 거짓말쟁이들을 위해 거짓말을 해”라면서 흐느끼는 동료의 눈물을 본다. 아야메이 역시 조국 중국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 “내가 여자로서의 삶을 희생시킨 게 서구의 악에 감염된 나라를 위해서였어?”(304쪽)

소설의 배경이 된 스파이 세계만 걷어내면 우리의 일상이 보인다. 학교, 직장, 국가 등 사회 조직은 끊임없이 개인을 포섭해 충성을 요구한다. 우리는 배신자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가식적인 표정으로 타인을 대하고, 조직을 위해 개인의 욕구쯤은 희생한다. 소설은 말한다. ‘냉혈한의 대명사인 스파이조차 사랑을 택하는데 당신은 왜 그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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