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끝장을 안 봐서, 바닥을 안 쳐서 미련이 남은 거야..."
SBS 월화드라마 ‘연애시대’(연출 한지승)에서 동진(감우성)과 은호(손예진)을 두고 미연(오윤아)이 했던 말이다. 이에 질세라 닥터 공(공형진)도 "더 이상 미워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애정인 거야"라는 말을 덧붙인다. 누구보다 헤어졌던 시점에 미련을 두고 있는 건 동진과 은호 두 사람이다.
"너랑 헤어진 걸 이해해줄 사람이 너 밖에 없어"
두 사람이 나누는 가슴 아픈 대사에 일본의 감성작가 이시다 이라의 <1파운드의 슬픔>(황매. 2006)에 실린 단편 ‘옛 남자친구’가 어우지면 슬픔이 배가 된다.
“그러고 보니 하루카 너, 다케히로 씨하고 헤어진 뒤로는 남자들하고 오래 간 적이 없는 것 같아”
친구 가즈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인공 하루카를 ‘너무 잘 안다’는 사실이다. 하루카는 가즈미의 말에 수긍했다. 헤어진 지 18개월이 됐지만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옛 남자친구’ 다케히로. 그와 헤어진 후 세 명의 남자와 사귀어봤지만 길게 간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루카에게 6년을 사귀면서도 권태기조차 느껴보지 못했던 다케히로와의 관계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다케히로와 하루카는 ‘연애시대’의 동진과 은호처럼 ‘다시’ 만난다. 머뭇거리던 전화기를 들어 하루카에게 전화한 다케히로는 묻는다. “근데, 하루카... 지금 사귀는 사람 있어?” 서로가 지금 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기쁜 속마음을 애써 감춘 채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다음에야 하루카는 다케히로와 네 시간이나 통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년 반만의 대화는 무려 네 시간 동안이나 이어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카는 전화를 끊기가 아쉬울 정도였다”
이시다 이라의 아름다운 문체를 타고 다케히로와 하루카의 재회는 그림처럼 펼쳐진다.
“근데, 다케 하나도 안 변했다”
“난 지금도 하루카의 대학 때 모습이 기억나. 여름 내내 지지미면으로 된 체크 무늬 원피스만 입고 다녔지?”
“다케야 말로 늘 똑같은 청바지에 늘어진 티셔츠만 입고 다녔잖아”
소설속 두 사람처럼, ‘연애시대’의 동진과 은호 역시‘퉁명스러운’ 말투로 첫 만남을 회상한다.
"그때는 아직 선수시절이라 어깨가 장난이 아니었는데 원피스를 입고 있더라구요. 하늘하늘 꽃무늬. 집에 거울도 없는지"(동진)
"첫인상? 기억도 안나요. 머리에 젤을 어찌나 많이 발랐는지 조명을 그대로 반사하더라구요"(은호)
소설과 드라마는 서로의 지난시간을 ‘흉’보는 마음이야 말로 간절한 ‘그리움’ 임을 잔잔히 그려낸다.
소설 역시 드라마처럼 두 사람의 미래를 섣불리 예고하진 않는다.
“코 고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우니까 그렇지”
다케히로의 품에 안기자 하루카의 모든 말은 눈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그런 하루카를 아무 말 없이 다독여 주는 다케히로. 작가는 “이 사람은 굳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해줄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라는 아름다운 문장을 덧붙인다.
10편의 단편이 오밀조밀 붙어 있는 <1파운드의 슬픔>은 ‘예고편 없는’ 사랑을 그린다. 지나간 자리를 돌아보게 되는 미련을 ‘아름답다’ 고 말하는 이시다 이라의 감성이 ‘연애시대’의 감성을 넘나든다.
(사진 = 방송장면)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