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정민호 기자] <공중그네>로 선명한 웃음을 맛보게 해줬기 때문일까?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 특히 책 제목이 마법 주문의 일부인양 들리기에 <라라피포>에 대한 기대는 <공중그네>의 연장선상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섣부른 추측은 금물이다. <공중그네>의 분위기를 기대했다면 허를 찔려도 아주 단단히 찔리게 될 테니까.

 
ⓒ2006 라라피포
<라라피포>는 <공중그네>와 구성이 비슷하다. 6명의 등장인물이 차례로 등장해 각자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이다. 첫 번째 인물은 명문대 출신의 스기야마 히로시, 한때 잘 나갔지만 대인공포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공중그네>에서 이라부 의사를 찾았던 첫 번째 환자 야쿠자가 떠오른다. 그렇다. 증세가 비슷하다. 그러나 <공중그네>에는 이라부가 없다. 그러니 히로시가 혼자 해결해야 한다.

히로시는 기생오라비 같은 위층 남자의 섹스 소리를 듣는다. 여자 한번 집에 데려올 수 없는 히로시로서는 부러운 일이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히로시는 그 소리에 흥분한다. 그래서 소리에 집착하기 시작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남자가 떠나 버리고 히로시는 혼자 남겨진다. 그럼 히로시는 어떻게 하는가? 직접 섹스를 해보기로 결정하고 거리로 나간다. 그런데 대인공포증이 어디 쉽게 가겠는가? 우물쭈물, 갈팡질팡할 뿐이다.

그럼에도 히로시는 적극적인 성격을 지닌, 뚱뚱해서 만만하다고 여기는 사유리라는 여성과 관계를 갖는데 성공한다. 자, 이쯤 되면 히로시가 사랑에 눈을 떠 '이라부'식의 처방으로 삶을 바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선입견은 금물. 히로시는 망가진다. 뚱뚱하다고 사유리를 갖고 놀다가 버리더니 될 대로 되라는 듯 망가져간다. 그러다가 다시 사유리를 떠올린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섹스가 하고 싶어서. 그래서 사유리를 찾아갔는데 어처구니없는 망신을 당한다. 그러면서 히로시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히로시의 이야기에선 <공중그네>식의 유쾌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당황스럽다. 쉽게 넘길 수 없는 결말이다. 진취적인 것도 없고, 희망적인 것도 없고, 즐거운 것도 없다. '자기 비하'적인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다가 망가지는 이야기뿐이다. 혹시 다른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뭔가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가져볼 수도 있겠다. 정말 그럴까? 다섯 번째로 등장하는 소설가 사이고지 게이지로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그는 왕년에 주목받는 소설가였다. 그러나 <라라피포>에서는 관능소설가로 나온다. 말이 좋아 관능소설가지, 스스로가 부끄러울 정도로 노골적인 섹스 이야기만 질퍽하게 늘어놓는, 사람들이 흔히 소설보다는 야설이라고 부르는 텍스트를 쓰는 작가다. 어쨌든 간에 게이지로는 잘 나간다. 책이 좀 팔리는 것이다.

하지만 순수문학을 하고픈 욕심에 게이지로는 가슴이 답답하다. 글을 쓰면서도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공중그네>의 마지막 환자 여류작가가 떠오른다. 역시 소설가였던 그녀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게이지로도 히로시처럼 이라부가 없으니 직접 해결해야 한다. 게이지로는 노래방에서 여고생들을 만난다. 명목상 관능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지만, 진짜 속마음은 여고생들 때문에 흥분해서다. 매일같이 찾아가서 돈을 쏟아 붓는다.

어쨌든 새로운 경험을 해서인지 아니면 변화를 맞이해서인지 게이지로는 순수문학을 들고 자신을 등단시켰던 출판사로 찾아간다. 뭔가 희망적인 이야기가 예상되는가? 분위기상 '이라부'식의 처방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다. 게이지로는 절망한다. 그래서 다시 노래방에 가고 평소에 안하던 행위를 시도한다. 어처구니없게도 경찰이 출동한다. 게이지로는 완전히 망한다!

게이지로의 결말도 히로시의 것과 비슷하다. 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라라피포>에 등장하는 나머지 4명, 여자를 등쳐먹고 살아가는 건달 겐지, 에로 배우가 된 아줌마 요시에, 남의 말을 거절 못하는 소심한 아르바이트생 고이치, 못생긴 뚱땡이 사유리의 이야기 모두 한결 같다. 정말 하나같이 성공과는 담을 쌓은 이들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라라피포'라는 마법 주문 같은 뉘앙스의 책 제목과는 동떨어진 이 이야기는 무엇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이쯤에서 '라라피포'의 정체를 밝혀야겠다. 라라피포는 '어 랏 오브 피플(a lot of people)'을 빠르게 발음할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그러니 책 제목은 '많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냥 많은 사람들이 아니다. 성공과는 담 쌓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단지 이런 비주류 인생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 것일까? 아니다. <라라피포>는 경계심을 일으키는 책이다. 혹여 주세페 쿨리키아의 <빗나간 내 인생>을 기억하는지? 절망적인 인생을 보여줌으로서 어느 책보다도 강력하게 '이렇게 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해줬던 <빗나간 내 인생>. 그 책은 지양할 것을 보여줌으로서 자연스럽게 지향할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라라피포>도 그렇게 볼 수 있다. <공중그네>에서는 이라부가 등장해 치료해줬지만 <라라피포>는 반대로 알아서 치료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환자가 귀찮아서 치료하지 않으면? '우울'한 6명을 보게 된다. 그러니 어찌 자발적으로 치료하지 않으랴.

6명은 "인생 뭐 있어?"라고 생각한다. 그리곤 막 산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인생 뭐 있어?"라고 말하면서 변하려고 시도할 수도 있다. 이들처럼 자포자기하듯, 희망이라는 단어와 결별한 채로 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 성공과는 담 쌓은 많은 사람들을 의미하는 '라라피포'는 착각한 대로 마법의 주문으로 만들 수 있다.

어떻게? 방법이 좀 잔인할 수 있겠지만 <라라피포>의 주인공들을 자주 보면 된다. 그러면 어떻게든지 스스로에게 마법을 걸려고 발버둥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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