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가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문학사상사. 2000) 이후 5년 만에 발표한 단편집 <도쿄기담집>(문학사상사. 2006)에서도 유려한 글 솜씨와 풍부한 감수성으로 독자를 사로잡고 있다. 각종 미니홈피, 블로그, 카페 에서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과 함께 인기 스크랩 문장 1,2위를 다투는 하루키의 명대사는 <도쿄기담집>에서도 유감없이 빛난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서 살던 때 직접 경험했던 일을 소개하는 첫 번째 단편 ‘우연한 여행자’의 명대사.

“당신을 만난 덕분에 지난 일주일, 꽤나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어요. 왠지 10대로 돌아간 것 같아서 즐거웠어요. 미용실에 가기도 하고, 단기간 다이어트를 하기도 하고, 이탈리아제의 예쁜 속옷을 사기도 하고...”

“꽤 많은 소비를 부추긴 것 같네요”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여자의 설렘 가득한 고백에 대한 남자의 재치 있는 대답. 하루키가 아니면 불가능한 문장이아닐까 싶다.

하와이에서 서핑을 즐기던 중 상어에게 한쪽 다리를 잃고 사망한 청년의 어머니 이야기 두 번째 단편 ‘하나레이 만’의 명대사.

“사치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것은, 고교생이 된 이후였다. 그때까지는 피아노에 손을 대본 적조차 없었다. 그녀에게는 원래 절대음감이 있었으며, 귀도 남들보다 빼어나게 좋았다. 어떤 멜로디라도 한 번만 들으면 그것을 즉시 건반으로 옮길 수 있었다. 누구한테 배우지도 않았는데 열 개의 손가락들은 매끄럽게 움직였다”

주인공 사치의 뛰어난 피아노 실력을 묘사하는 하루키의 문장은 빠르고, 매끄럽다.

아파트에서 실종된 남편을 찾기 위해 사설탐정에게 찾아가는 여성의 이야기 세 번째 단편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에서’의 명대사.

“25분후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의 상태가 대충 안정됐으니까 지금 계단으로 집까지 올라갈게. 당장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아침 식사를 준비해줘. 배가 무척 고프거든. 하고 남편은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즉시 프라이팬을 달구어 팬케이크를 굽기 시작했습니다. 베이컨도 구웠습니다. 메이플 시럽도 적당한 온도로 데웠습니다. 팬케이크라는 건 결코 복잡한 요리는 아니지만 순서와 타이밍이 중요하거든요. 하지만 그러고 나서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팬케이크는 접시위에서 점점 식으며 굳어갔습니다”

실종된 남편과 팬케이크 요리를 절묘하게 묘사한 문장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인연에 관한 이야기 네 번째 단편 ‘날마다 이동하는 신장처럼 생긴 돌’의 명대사.

“남자가 일생 동안 만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여자는 세 사람밖에 없다. 그보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지. 그러니까 만일 네가 앞으로 여러 여자를 만나고 사귄다고 하더라도 상대를 잘못 고르기라도 하면 그건 모두 쓸데없는 일이 되어버리지. 그 점을 똑똑히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아버지의 충고를 ‘의미심장’한 무게로 묘사한 하루키. 아버지의 말을 기억하는 주인공 쥰페이는 소설가가 되고 여자를 만나 이런 말을 한다.

“소설가를 만났다 하더라도 특별히 재미있는 일은 없을 거예요. 뭔가 특별한 재주를 갖고 있는 건 아니니까. 피아니스트라면 피아노를 칠 수 있고, 화가라면 스케치라도 할 수 있고, 마술사라면 간단히 마술이라도 보여줄 수 있겠지만... 소설가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거든요”

소설가의 직업을 재치 있게 표현한 문장이 돋보인다.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한 여자의 기묘한 이야기 마지막 다섯 번째 단편 ‘시나가와 원숭이’의 명대사.

“이름이 그곳에 있으면 훔쳐가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습니다. 제 마음이 끌리는 이름은 따로 있습니다. 그런 이름이 있으면 그것을 손에 넣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쁜 일인 줄은 알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그걸 억제할 수가 없습니다. 폐를 끼친데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름을 훔치는 원숭이도 특이하지만 원숭이의 대사는 더욱 눈길이 간다. 잘못에 대한 대가로 엉덩이에 낙인을 찍어두자는 사람들에게 원숭이는 부탁한다.

“제발 그것만은 하지 말아주세요. 엉덩이에 묘한 마크가 새겨져 있거나 하면, 따돌림 당해서 원숭이 동료들 사이에 여간해서 끼어들 수 없게 됩니다. 무엇이든 숨김없이 다 말씀 드릴 테니까 낙인만은 제발 찍지 말아주세요”

이름을 훔친 ‘중죄’를 저지른 원숭이지만 하루키의 귀여운 대사가 원숭이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5편의 독립된 소재와 장르에서 느껴지는 묘한 매력은 `역시 하루키!`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번역문학가 허 호는 추천글에서 "`기담`이란 기이한 이야기를 뜻하지만 결코 `괴담`은 아니다. 우리주변에 어디에선가 이따금 발생하고 있거나 언제라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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