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무렵 - 2002년 제27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작품집
공지영 외 지음 / 청어 / 2001년 11월
절판


"사랑이 많으신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 여기 뒷골목을 헤매던 어린 양들이 왔습니다. 아버지 앞에서 죄를 따지자면 무고한 자 그 누구겠습니까마는 아버지 특별히 이들 자매의 죄를 용서해주십시오. 간음한 여인을 두고 너희들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어 저 여인을 치라, 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어둠속에서 헤매는 두 어린 양들을……"
목사의 기도를 듣고 있다가 순례는 눈을 떴다. 도둑질은 동생이 했는데 왜 불쌍한 어린 양이 하나가 아니고 둘이 된단 말인가. 이것들이 내가 동생 일에 발벗고 나선다고 나까지 도매금에 도둑으로 넘기나 싶어 순례는 화가 난 것이다. 게다가 누가 뒷골목하고 어둠속을 헤맨단 말인가. 남편 죽고 십몇년 동안 남의 물건 손 안 대고 내 손으로 벌어서 새끼들 키워놨는데, 몸 파는 거 빼고 안해본 것 없이 고생고생 살아왔는데, 어두운 골목을 헤맬 시간이 어디 있었나, 싶었다. 이래서 내가 교회를 안 나간다니까…… 순례는 불쾌해졌다. 언젠가 딸 지수의 성화에 못 이겨 나간 교회에서도 순례보고 그랬다. 회개하라고, 당신의 죄를 반성하라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순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딸이라고 공부 안 시켜준 어머니 죄였고, 좀 지그시 기다리지 못하고 분당의 땅을 홀랑 팔아버린 아버지 죄였고, 남편을 죽여버린 하나님 죄에다가, 아들 죽었다고 어린것들 딸린 순례를 돈 한푼 주지 않고 내쫓은 시어머니 죄였다. 그러나 목사의 기도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순례는 눈을 뜬 채로 앉아 있었다. 잠시 기도하자더니, 목사의 말은 끝날 듯하면 이어지고 끝날 듯하면 이어졌다. 눈을 감고 있기도 뜨고 있기도 뭐했다. 그래서 순례는 목사처럼 다시 두 손을 모으고 혼자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저 목사님의 기도가 빨리 끝나게 해주십시오……

=>때론 생각없는 종교가 상처에 약대신 소금을 문질러대는 경우가 있어요.-부활무렵쪽

사랑이라는 것이 안 보면 보고 싶고 마음이 끌리고 따라서 몸도 저절로 그쪽으로 가고 오래도록 이렇게 살고 싶어지는 것이라면,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몸이 이미 그쪽으로 가는 거, 그게 사랑이라면 두 번이나 해 봤어요. 학교 다닐 때 연애를 했구요, 그리고 결혼도 한 번 했어요. 젊었을 때의 사랑이란 불 붙기 쉬운 대신에 얼른 식잖아요. 선배였어요. 그땐 사랑이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어요. 거름 먹고 올라오는 오이 대처럼 푸르고 탱탱하고, 그래서 그랬겠지만 너무 웃자라는 사랑을 했었죠. 스무 살 때였으니까.-먼곳에서온사람쪽

흰색과 검정색을 섞으면 회색이 되잖아요? 저 유럽 중에서도 정열적이라고 소문이 난 나라에서는, 그들이 쓰는 말에서는, 슬픔의 색이 회색이래요. 이해해요. 파란색을 슬픔의 색으로 보는 나라도 있지만 내가 볼 때는 회색이 훨씬 슬픔의 중심을 엿볼 수 있는 색깔이에요. 닮은 곳이 전혀 없는 상반된 두 개가 뒤섞여 있다는 것이 바로 슬픔이거든요.
하지만 말이죠. 살면서 감내해야 할 것들 중의 첫째가 그것 아닌가 싶어요. 홀로 남아서 사람들의 사랑을, 언제 어디서든지 끊임없이 생기는 사람들의 사랑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봤어요. 그리고 보니까 말이죠, 뜻밖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과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더라고요? 자신이 원하는 형태란 아무래도 자기의 특성들이 투영된 모습이기 때문에 스스로와 제법 닮아 있기 마련이죠. 물론 자신과 닮은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는 않지만.
결혼할 때가 되면 자신이 그동안 키워 온 생각과는 다른 사람에게 끌려 버린 것이죠. 호호. 그리고 한 평생 후회하고 살지요. 왜 그때 저 사람에게 끌렸을까,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들죠. 가만히 보면 말이죠. 그렇게 뜻하지 않게 끌렸던 이들은 여러 개인적인 특징들이 완전히 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에 대한 매력이나 기대. 그러니 이해 못하는 부분이 많이 생길 수밖에.-먼곳에서온사람쪽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미주아파트에서 태어나 금호 아파트와 현대아파트를 거쳐 한양아파트에 살았다. 그래서 꽃 이름이나 나무 이름, 새 이름 따위를 잘 알지 못한다. 장미와 카네이션, 국화나 개나리가 아니라면 내겐 '이름 없는 꽃'이고, 참새나 까치나 '하늘의 쥐' 비둘기가 아니라면 내겐 '이름 없는 새'이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이 시인이었는데, 그는 '이름 없는 꽃'이나 '이름 없는 새'는 있을 수 없다고 우리를 나무라곤 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이름이 있다고, 우리가 이름 대신 학급 번호로 불리길 싫어하는 것처럼 그들도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원하고 있을 거라고 했다.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한 문제 틀린데 한 대씩 박달나무 찜찔을 했어도 선생에게는 별 원망이 없었다. 시인이라면 누구보다 감정이 풍부할 텐데, 국어 선생은 적어도 감정으로 아이들을 때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선생 말대로 꽃과 나무와 새 이름을 외워두지 못한 게 조금 후회된다. 그 아이를 생각할 때 내 코끝에 향기로 스치는 꽃, 마음속에서 파르릉 날아오르는 새, 꽃과 새를 쫓아 한없이 헤매 도는 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 그 안타까움으로 내 열감기는 더욱 오래 낫지 않는다.-첫사랑쪽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 피로와 지루함을 쉽게 느끼고 조기에 상황을 종료하는 정욱에게 몇몇 친구들은 '한국인 환자'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제법 보고서 형식을 띤 진단결과는 이러하다. 한국인 환자는 우리의 현대사에서 끊임없이 저항했던 전 시대의 사람들, 그러니까 그들의 행동 양식이 바이러스로 변형되어 발병한 환자라는 것이다. 정욱과 같이 세상에 값싼 조소를 뱉는 인물들에게 특히 잘 감염되는 것으로 구십 년대의 이십대가 겪는 돌연변이적 현상이라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지배적인 견해였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지속적인 시공간에서 불안심리가 작용하여 변화를 추구하게 되는데, 그것을 방해받을 때에는 급기야 자기 해체적 폭발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빠른 시공간의 변화 속에서만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한국인 환자였다. 이런 진단은 술좌석이나 수업시간에 간혹 정욱이 내뱉는 지나간 역사에 대한 과도한 비판과 철학적 열변을 바탕으로 내려졌다. 내가 정욱의 그림자로 여겨졌던지 그들은 세심하게도 나에게 바이러스 감염에 주의하라는 충고 또한 잊지 않았다. 바로 그러한 한국인 환자 증후군이 극장에서도 발병한 것이었다.-카사블랑카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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