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소주 다섯 병 마실 수 있다 - 최승은 시집
최승은 지음 / 이레 / 2001년 7월
절판


삼십 대에 이르러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기 시작하는 여성에게 우리는 그녀의 고유 명사를 빼앗고 대신 '아줌마'라는 명찰을 달아준다. 이때부터 엄마, 아내, 딸이라는 세 가지 역할을 여성은 감당하게 되는데, '아줌마'라는 통칭은 이 모두를 포함하는 용어이다. 역할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생활 속에서 비중 있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줌마'라는 이름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누가 나를 아줌마라고 불러주었을 때 나는 당당한 나의 존재를 확인받는 것이 아니라, 뭔가 불쾌한 혹은 모멸스럽게 희화된 나의 사회적 존재를 깨닫게 된다.
여기에는 억척스럽고 품격이 없는, 그리고 성적 매력을 이미 상실한 존재라는 타자의 왜곡된 시선이 가로놓여 있다. 여성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할수록 이러한 타자의 그릇된 시선은 더욱 완강해진다. 더 중요한 것은 아줌마라는 이름이 '나'라는 주체의 본질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체는 사라지고 도구화된 이름만 남겨질 때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라고 여성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누구이며, 진정한 행복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끝끝내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의 정체는 무엇인가. 공허의 심연 속에서 울려 오는 이러한 물음들과 한판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이 최승은의 시이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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