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김태훈기자]
‘범죄는 피아노 같은 거다. 예술적 경지에 이르려면 일찍 시작해야 한다.’
여기 소개하는 소설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범죄는 나쁜 것인가? 일상에서라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변수에 의해 범죄는 이 소설에서 아름다운 예술, 또는 구원의 메시아적 행동으로 추앙받는다. 그 범죄의 구체적 행위는 살생이다.
주인공은 올해 열살 난 꼬마 아스카. 이 아이의 취미는 고양이 죽이기. 그것도 아주 엽기적인 방법으로 죽인다. 먼저 제물이 된 고양이에게
나폴레옹, 맨슨, 피노체트, 에바 페론 등 유명한 살인자나 정치가 등의 이름을 붙인다. 이어 죽이는 방법을 선택한다. 찔러 죽이는 것은 너무 쉽다. 태워 죽이고, 감전사시키고, 갈아 마시고, 술 먹여 교통사고 유발하고, 무식하게 그냥 때려죽이고, 뾰족구두 뒤꿈치로 밟아 죽인다. 자식의 만행에 넌더리가 난 부모는 아이를 정신병원에 데려간다.
사회가 비정상적인 아이를 정상적 대응방식으로 맞서는 것은 여기서 끝이다. 아스카가 사는 유토피아의 성스러운 지도자가 백혈병에 걸리자 사회의 기존 가치가 뒤집힌다. 적어도 지도자라면 병따위로 죽을 수 없고 권위에 걸맞는 독특한 죽음을 맞아야 한다. 그 필요를 맞추기 위한 작전으로 지도자는 형사 미성년자인 아스카에게 살인을 청부한다.

사회는 ‘고양이 킬러’인 아스카의 살의를 일으키기 위해 ‘지도자는 고양이다’라는 제목의 백일장을 학교에서 개최한다. 유토피아 곳곳에 ‘지도자는 고양이를 닮았다’는 벽보도 나붙었다. 비정상적이고 엽기적인 살해극의 주범으로 가족의 걱정거리였던 아스카는 공동체의 신화를 지키는 영웅으로 거듭났다.
어이없는 줄거리지만 이 익살스러운 모순이 독자로 하여금 질문 하나를 던지게 한다. “우리가 사는 현실 또한 가치가 뒤집혀 있거나 뒤집힌 가치의 지배를 받는 곳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