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박해현기자]

금괴를 훔친 좀도둑이 공범을 따돌리고 튄다. 황량한 겨울 핀란드의 숲으로 숨는다. 도둑은 이상한 사람들을 만난다. 알코올 중독자인 육군 소령, 양로원 환자 되기를 거부한 노파, 정체불명의 미녀들, 수렵 관리를 맡고 있는 경찰관 등등...그들은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방외인들이다. 숲은 마치 거울의 뒷면처럼 존재하는 현실의 이면이다.

이 책을 쓴 파실린나는 소설 ‘기발한 자살 여행’으로 이미 국내에 소개된 핀란드의 인기 작가다. 1942년 전쟁의 한 복판에서 독일군을 피해 달리던 트럭 안에서 태어났다. 벌목 인부에서 신문 기자까지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숲에서 일하면서 땅을 일구고, 나무를 자르고, 고기를 잡고, 사냥을 했다. 그때의 경험들이 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파실린나의 소설은 먼 북구의 풍경을 향한 상상력의 초대장이다. ‘둘은 함께 사우나를 가서 땀을 빼며 자작나무 가지다발로 열심히 몸을 후려쳤다. 혈액순환에 좋은 민간요법이었다’는 문장을 읽다보면 몸에서 김이 나는 듯하다. ‘밖에서는 북극광의 화려한 불빛 속에 늑대 세 마리가 노르웨이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는 문장은 유럽의 변방을 향한 일탈 욕망을 부추긴다.

파실린나의 소설은 인간 사회에 대한 풍자 문학이다. 현실을 벗어나 숲으로 기어든 인간들은 숲 바깥의 국가와 사회, 제도의 부조리를 비아냥거린다. 이 소설에서 ‘목 매달린 여우’란 어리석은 욕망에 목을 매고 사는 인간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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