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유석재기자]
새의 발 같은데 이게 뭘까? 표지를 넘기면 양쪽으로 수탉과 암탉의 얼굴이 보인다. 다시 책장을 넘기면 암탉이 자기 몸에서 깃털을 뽑고 있다. 뭘 하는 거지? 그 다음 장을 보면 곧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깃털이 쌓인 위에 쏙, 하얀 알 하나가 떨어진다.
이것은 순수한 ‘그림책’이다. 글은 단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암탉이 알을 낳고, 품고, 이윽고 알을 깨고 병아리가 태어나 다시 닭이 되는 과정이 검정·노랑·빨강 세 가지 색깔로만 이뤄진 그림으로 설명된다.
싱거운 얘기가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숨막히는 긴장의 찰나가 클로즈업과 섬세한 펜의 질감, 치밀하게 계산된 화면 배치로 표현될 때, 여러 장의 글로 풀어 써도 다 하지 못할 이야기들이 그곳에 함축돼 있다. 생명의 생동감과 자연의 위대함, 끊임없이 대(代)를 이어가는 역사의 연속성이 바로 그것이다. 1960년대 ‘어린이 책의 혁신’으로 이름 높은 이탈리아 작가의 솜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