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기묘한 분위기의 단편을 수록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최신 단편집 ‘도쿄기담집’(東京奇譚集·문학사상)이 나왔다.

지난해 출간된 장편 ‘어둠의 저편’ 이후 1년 만에 보게 되는 하루키 신작이지만, 단편집으로는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2000년 출간) 이후 5년 만의 작품이다.

소설은 ‘기담(奇譚)’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신비한 사건이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을 법한 꿈같은 이야기 5편을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 하루키의 대표적 단편집인 ‘렉싱턴의 유령’과 비슷한 분위기면서도 인간의 심리를 파헤치는 작가의 시선은 더욱 원숙해졌다.

첫번째 이야기 ‘우연한 여행자’는 게이 피아노조율사가 누나와 관련해 겪은 진기한 체험을 담은 작품으로 혈육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한다. 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족과 연락을 끊고 산 지 10년이 된 피아노조율사는 한갓진 카페에서 한 여자를 알게 된다. 조용한 카페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구하기조차 어려운 유행에 떨어진 책을 동시에 읽고 있었다는 점 때문에 자연스레 친구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조율사는 그녀의 오른쪽 귓불에 난 점 하나를 발견하고 “숨이 찰 것만 같은 그리움”을 느낀다. 그녀와 같은 위치에 점이 있었던 누나에 대한 기억이 순식간에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하루키가 이번 단편집을 내면서 새롭게 쓴 소설로 기담이라기보다 괴담에 가까운 파격적이고 풍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안도 미즈키라는 여성은 다른 것은 모두 기억이 나는데 유독 자신의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일을 자주 겪게 된다. 점차 증세가 심해져 병원도 찾아보지만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대한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직감으로 느끼고 ‘마음의 고민 상담실’이란 곳에서 상담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이 말을 하는 원숭이에게 이름을 빼앗겼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평생 이름과는 분리해서 살 수 없는 인간의 삶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척하는 등 진실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이중성을 원숭이의 입을 통해 서늘하게 풍자한다. 임홍빈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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