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삼 기자 =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등으로 한국에 널리 알려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57)의 단편소설집 '도쿄기담집'(문학사상사)이 번역돼 나왔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이후 5년 만에 펴낸 신작 단편집이다. 하루키의 표현을 빌자면 '하잘 것 없는 자질구레한 사건들, 그러나 어떤 것은 의미를 지닌 사건이어서 인생 본연의 모습을 다소나마 바꿔놓은' 기묘한 이야기 5편을 담고 있다.

첫 번째 수록작 '우연한 여행자'는 하루키 자신이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 살 때 직접 경험했거나 전해들은 일을 다뤘다. 그 중 하나가 하루키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통하는 재즈와 관련된 이야기.

하루키는 어느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재주 연주자 플래너 건의 연주회에 참가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플래너 건은 그날 연주가 거의 끝날 무렵까지 재미없는 곡만 계속 연주했다.

플래너 건이 수수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바르바도스'와 '스타크로스드러버스' 두 곡을 잇달아 연주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하루키가 내심 바랐을 때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플래너 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하루키 쪽을 쳐다보는 일도 없이 하루키가 바라던 두 곡을 잇달아 연주한 것이다. 그것도 그날 연주회의 마지막 두 곡으로.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재즈곡 가운데, (마지막에 그 두 곡을 잇달아 연주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숫자일 것이다. 그리고 - 이것이 이 이야기의 커다란 포인트지만 - 그것은 참으로 매력적이고 훌륭한 연주였다."(본문 중)

상어에게 물려 죽은 아들 장례를 치른 어머니가 겪은 기묘한 경험담 '하나레이 만', 아파트 24층과 26층 사이에서 실종된 가장의 이야기 '어디에서든 그것이 발견될 것 같은 장소',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소녀의 이야기 '시나가와 원숭이' 등 수록작들은 하나같이 기묘하다. 그런데도 기괴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이야기들 자체가 어쩌면 우리 주변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고 가끔은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일들이기 때문일까. 무엇보다 이야기들 속에는 공통으로 하루키 방식의 삶에 대한 애착들이 녹아있기 때문일 듯 싶다. 좋은 날 재즈가 흐르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듯한 여유와 함께.

"사실 나는 그런 초자연적 현상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점괘에 끌린 적도 없다. (중략) 하지만 그런데도 적지 않은 여러 가지 불가사의한 현상이 나의 조촐한 인생 여기저기를 다채롭게 만든다."(본문 중)

책은 일본에서 발매 하루만에 아마존 재팬 판매순위 1위를 기록해 하루키의 변함없는 인기를 실감케 했다. 임홍빈 옮김. 280쪽. 9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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