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발성 전신 위축증’
병명도 낯 설은 이 질병으로 아내가 식물인간이 된 지 벌써 10년째. 남편은 그런 아내를 위해 백방으로 구해온 수십 가지 약을 챙겼고, 조미료를 넣지 않은 무공해 음식으로 매 끼니를 차리며 24시간을 아내의 그림자로 생활했다.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고, 치료방법도 없다는 기이한 병은 방영 중인 한 드라마의 제목처럼 정말 ‘어느 날 갑자기’ 부부에게 찾아왔다.
1997년 1월 허리통증을 호소하던 아내는 곧 ‘다발성 전신 위축증’ 진단을 받았고 휠체어 신세를 거쳐 눈꺼풀과 오른손 엄지?검지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식물인간상태가 됐다.
눈꺼풀과 오른쪽 엄지와 검지만을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아내에게 “우리 사랑은 의리 같아요. 정말 서로를 목숨과 같이 여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죽을 때까지 지켜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새벽 풀 위에 내려앉은 이슬처럼 가만히 속삭이는 남편의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하다.
남편 이철수씨는 정년퇴직을 앞둔 공무원이다. 서울 중구의회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다 오는 6월 퇴직을 앞두고 공로연수 중인 그가 병상에 누운 아내를 돌보며 10년간 써온 간병일지는 <당신이 살아있으므로 행복합니다>(책이있는마을. 2006)라는 아름다운 제목으로 묶였다.
‘아내에 대한 작은 기록이라도 남기고 싶어서’ 책을 냈다는 저자는 자모 글자판을 통해 아내와 소통해왔다. 글자를 보여주면 눈꺼풀을 깜빡이며 의사전달을 해왔던 아내는 최근 이마저 힘에 부쳐 한다. 한 문장을 완성하는 데 30분 넘게 걸리지만 "남들은 3초 안에 끝나는 말이지만 이렇게라도 마음을 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쁨"이라고 말하는 아름다운 남편이다.
저자는 “이 책이 희귀성 난치병을 앓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작은 희망과 용기가 됐으면 합니다”라는 소망을 밝혔다.
“사랑은 없다”고 외치는 현대인들의 차가운 가슴을 부끄럽게 만드는 이들의 숭고한 사랑 뒤에 기자의 옹색한 문장 대신, 괴테의 말을 덧붙인다.
"아무리 큰 공간일지라도 설사 그것이 하늘과 땅 사이라 할지라도 사랑은 모든 것을 메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