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 된 744페이지의 방대한 분량 <읽는다는 것의 역사>(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6)가 ‘읽기’에 대한 다양한 역사적 견해를 펴내 눈길을 끌고 있다.
책에 따르면 아우구스투스 시대 전에는 여성독자가 없었다. 폼페이의 그림유적, 석관에 새겨진 조각에 남성독자 사이에 책을 읽는 여성이 등장한 것은 대략 이 시기 이후의 일이며 여성이 책 문화 속으로 들어오는 데에는 반대 세력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당시 로마사회와 일부 작가들은 교육받은 여성들을 ‘도무지 보아줄 수 없는 꼴불견’ 자체로 여겼으며 `여성들이 책을 읽어도 그 속의 일부는 이해하지 못할 것` 이라고 생각해 여성독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여성 자기계발서, 성공한 여성 CEO들의 경제, 경영서 등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온 최근의 국내출판시장과 비교해 보면 엄청나게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여성들을 자신의 독자층에 포함시킨 최초의 작가는 오비디우스였다.
그는 ‘사랑의 기술’ 제3권을 여성들에게 헌정했고, 여성들의 화장품 조제와 화장술에 관한 소품인 ‘여자의 화장법’을 써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랑으로 고통 받는 여성들의 이야기 ‘사랑의 치료법’도 큰 인기를 끌었다. 여성과 책 문화 사이에 막 성립되려는 새로운 관계를 묘사해 핵심인사가 됐다.
책은 “여성들의 독서는 남성적인 독서와 달리 속삭이는 듯한 소리로 읽는 ‘음독’과 비슷한 형태였다”고 밝힌다. 공공장소에서 책을 읽는 여성의 모습을 담은 흔적도 있지만 폼페이 유적에서 헬레니즘 말기 양식의 그림이 전해 주듯 여성들의 독서 장소는 가정이었다.
이어지는 19세기 소설에 대한 언급도 흥미롭다. ‘상상영역’에 속했던 소설은 여성들에게 알맞은 장르로 간주됐다. 공적 사건을 보도하는 신문이 일반적으로 남성영역이었던 데 반해 내면생활을 취급하는 소설은 19세기 부르주아 여성들이 쫓겨나있던 개인적인 영역에 속했다.
책은 소설이 19세기 부르주아 남편과 가부장에게는 다소 ‘위험한 물건’ 이었다고 해석한다.
여성의 정열을 불 지르고 상상력을 북돋우며 비합리적인 로맨틱한 기대를 품게 하고 정절과 질서를 위협하는 에로틱한 욕망을 심어주는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엠마 보바리, 안나 카레니나, 에피 브리스트(Effi Briest, 독일작가 데오도르 폰타네의 소설 <런던의 여름> 주인공)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간통이 사회 도덕적 죄를 다루는 소설의 원형이 된 것으로만도 당시 분위기를 짐작 할 수 있다.
책은 19세기 여성독자들이 개인적 독서인 묵독을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전한다. 묵독의 발전은 낭독을 사라지는 세계로 추방했다. 당시 여성독자들은 `내밀 privacy과 친밀 intimacy` 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개척자였다.
책을 펴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의 한기호 소장은 “<읽는다는 것의 역사>를 토대로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지역의 역사까지 아우르는 동양사를 검토하려고 한다. 한국사의 프로그램이 제 모습을 보일 때 프로젝트 3탄으로 이 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로제 샤르티에 (Roger Chartier), 굴리엘모 카발로 (Guglielmo Cavallo), 예스퍼 스벤브로 (Jesper Svenbro) 등 10여명의 저자가 공을 들여 완성한 ‘읽는다는 것의 역사’는 ‘읽기’의 역사화를 시도한 최초의 책이자 내밀한 여성들의 독서 역사를 들여다 본 주목할만한 인문서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