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기선민] 원 맨 탱고

앤소니 퀸 구술,

다이엘 페이스닉 지음,

청아출판사, 571쪽, 1996년 출간

"책은 연기 못지 않게 또 하나의 '작품' 이었다."고(故) 정운영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2001년 앤서니 퀸의 자서전 '원 맨 탱고'를 그렇게 평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로마 근교를 자전거 산책하며 삶을 회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자서전은 흡인력이 크다."위대한 명배우의 한쪽 구두에 두 발을 집어넣고 어떻게 해서든 걸어야 하는" (156쪽) 집념으로 연기를 익혀가는 과정 서술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덧칠하지 않은 삶 자체가 주는 인간미가 매력이다. 여인 6명 사이에서 자녀 13명을 뒀으며, 그중에 엄마를 밝힐 수 없는 아이도 있다는 고백을 털어놓는다. "전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 작업"이라는 한국어판 서문의 고백을 퀸 자신이 실천한 셈일까. 하이라이트는 16세 빨강머리 에비와, 그의 어머니 실비아 부인 사이의 삼각관계. 리얼하면서도 아름다운 대목이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그 "무식꾼"(117쪽)이 쥐었던 거대한 행운. 퀸은 실비아 부인의 스파르타식 교육을 따라 보들레르.헤밍웨이의 책에서 모차르트.바하의 음악을 들으며 스스로를 빠르게 향상시킨다. 생산성이라는 잣대로만 치면 제도권 교육 뺨 친다. 결국 이 책 자체가 특별하다기 보다 서구 자서전.전기.평전의 평균 수준이 이만하다는 점이 놀랍고 부럽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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