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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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나, 내일은 너

사막에서는
흐르는 강물처럼 살지 말고
어딘가에 고여 있는
작은 우물처럼 살아야 한다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겨야
사막을 움직일 수 있다고
사랑하면 더 많은 별이 보인다고
살아가노라면 그래도
착한 끝은 있다고
러시아제 낡은 지프차를 타고
고비사막의 길 없는 길을 달릴 때
먼 지평선 너머로
지는 해를 등에 지고
홀로 걸어가던
어린 낙타 한 마리-.쪽

어느 날 책을 읽다가 이 한마디를 읽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아리고 멍해졌습니다. 더 이상 계속해서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이 컸습니다. 이 말을 누가 한 말이라는 것은(문호 괴테가 한 말입니다만) 譴?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빛에게 고통이 있다면 바로 어둠이라고 생각했으나, 빛의 고통은 오히려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산과 바다가 산과 바다의 색깔을 내는 것이, 꽃과 노을이 꽃과 노을의 색깔을 내는 것이 모두 빛의 고통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저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빛깔이 빛에 의해 그저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그 아름다운 색채를 내기 위해 빛이 그토록 고통스러웠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빛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빛깔들을 주기 위해 그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봄이 오고 여름이 오는 동안, 강과 산과 나무와 풀잎들이 연두에서 진초록으로 점점 변해가면서 저에게 그토록 아름다움을 선사한 것이 빛의 고통에 의한 것이었다니! 비행기를 탔다가 우연히 해가 지는 장엄한 광경을 보고 잠시 넋을 잃었는데, 그 찬란한 노을빛이 빛의 고통이었다니! 백두산 천지의 그 맑고 푸른 물빛이, 고비사막의 높은 모래산 그 고운 물결무늬가 빛의 고통이었다니!-.쪽

저는 제가 경험한 이 지구의 모든 아름다운 풍경들이 빛의 고통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삶을 주도하는 고통이야말로 저의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색채들도 빛의 고통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보잘것없는 제가 고통에 의해 인간이라는 색깔을 지닌다는 것은 참으로 당연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도 고통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름다워질 수 없습니다. 고통 없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생이라는 말은 고통이라는 말과 그 의미를 같이합니다. 고통이라는 말의 또 다른 낱말입니다.
사랑도 고통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사랑이 시작되면 고통도 시작됩니다. 고통이 없으면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쪽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의 일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강물에 똑같은 손을 두 번 씻을 수 없는데도 자꾸 손을 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뿐입니다.

어제를 힘들어하면 오늘도 힘이 듭니다. 과거를 미워하면 현재도 미워집니다. 과거 속에 가두어놓고 바라보는 미운 사람은 오늘 현재 속에서도 미워집니다. 그래서 서로 과거의 감옥에 갇혀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이는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실은 과거 자체가 현재를 지배하는 건 아닙니다. 과거의 감옥에 스스로 갇힌 자에 의해서 과거가 현재를 지배합니다. 과거를 젖은 쓰레기처럼 생각한다면 과거는 그만 젖은 쓰레기가 되고 맙니다. 당연히 현재를 지배할 힘을 잃게 됩니다. 문제는 내가 과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과거의 무엇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느냐 하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의 행복했던 일보다 불행했던 일을 더 생각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불행에다 오늘의 불행의 원인을 둡니다. 오늘이 바로 과거의 결과라는 사실만으로, 그 결과가 좋을 때는 그렇지 않으나 못마땅할 때는 자꾸 과거를 원망합니다. 과거의 직접적인 악영향 때문에 오늘의 내가 고통스럽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과거만 원망하는 게 아니라, 오늘 현재도 원망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항상 과거의 결과에 의한 삶만 있게 되고, 오늘 현재의 삶은 없게 됩니다. 과거라는 삶의 연장선상에서 오늘을 살고 있을 뿐입니다. 과거에 미처 하지 못한 일을 오늘도 후회하고,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한 죄책감에서 오늘도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에 당한 일의 증오감에 아직도 시달린다면, 그것이 바로 현재에 살지만 과거에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중한 시간의 낭비입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소중한 시간을 낭비해버립니다.

과거는 오늘이 아닙니다. 오늘이 오늘입니다. 내일도 오늘이 아닙니다. 어제는 부도난 수표이고, 내일은 약속어음이며, 오늘은 준비된 현금입니다.
-.쪽

밤하늘에 아름답게 떠 있는 달은 실은 분화구가 있는 황야나 사막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달도 태양빛을 받으면 그토록 아름답습니다. 누가 저 보름달을 울퉁불퉁한 돌덩이나 흙덩이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은 인간을 만들 때 태양빛을 받아 보름달처럼 빛날 수 있는 아름다움을 하나씩 다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선물을 어디다 둔 줄 잘 모릅니다. 신이 선물한 나의 아름다움이 어디 있는지, 그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합니다.-.쪽

내 인생은 나를 위해 존재합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위해서 내 인생이 먼저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 인생이 먼저 존재해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인생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주인은 나 자신입니다. 남이 아닙니다. 주인인 내가 내 인생의 약한 부분을 쓰다듬고 껴안아주어야 합니다. 내게 약한 부분이 없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그것이 없어지면 또 다른 약점이 나타나 나를 괴롭힐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 부분이 없어지기를 바라기 전에 그 부분을 먼저 사랑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이 나중에 나의 가장 좋은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부분 때문에 내게 더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지 모릅니다. 가장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는 고목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가장 곧고 잘생긴 나무가 가장 먼저 서까랫감으로 쓰이고, 그 다음 못생긴 나무가 기둥감으로 쓰이고, 가장 못생긴 나무는 잘리더라도 대들보로 쓰입니다. 나의 가장 못생긴 부분이 끝까지 남아서 나를 지키는 대들보가 될 수 있습니다. 잘난 부분은 늘 잘났다고 오만해짐으로써 화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저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합니다. 저의 큰 약점을 작게 생각하고 감추기보다는 드러내고 살펴봅니다. 어쩌다가 자기 비하의 마음이 생기면 그 마음을 자기애의 마음으로 곧 전환시킵니다. 자기를 스스로 보살피는 마음, 자기를 스스로 존중하는 마음, 자기를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마음이 있을 때 남을 진정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하라.
저는 제 자신에게 늘 그렇게 말해왔습니다.-.쪽

박완서 선생도 마흔이 넘어서야 작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일찍 시작했다고 해서 반드시 일찍 이룰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일찍 핀 꽃이 튼튼한 열매를 맺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얼마만큼 오랜 시간 동안 참고 견디며 얼마나 정성껏 준비했느냐가 중요합니다.

=>때론 내가 늦은건 아닌가 생각했는데, 제가 용기를 주는 단락이네요.-.쪽

지난여름 나는 스웨덴의 공동묘지 두 군데를 '관광'했다. 유명한 헌대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광활하고 아름다운 묘지들이었다. 산 자들의 지척에 죽음이 있음을 온전히 이해한 영혼이 깨인 건축가에 의해, 손 안 댄 듯이 손 댄 거룩하되 따사로운 공간이었다. 고대에서부터 이루어져 온 하고 많은 역사 유적들이 장엄하나 쓸쓸한 인간 한계를 확인시키는 것과는 달리, 내게 그 공동묘지는 죽음의 힘으로 마침내 공평무사해져서 평화를 되찾는 인간들의 거처로 비쳤다. 거기 한 구석 어디서 한나절 졸고 나면 심신이 두루 때를 벗어 신선이 될듯도 했다.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 말을 건네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 수 있는 공간이 그 공동묘지였다는 말이다. 나는 그곳에서 죽은 자를 조상한 것이 아니라 죽은 자로부터 쓰디 쓴 삶을 위로받았다 하겠다.
그 공동묘지 둘 중 하나에 있었지 싶다. 작지작은 채플이었다. 땅속에 묻히기 전에 다시 한번 이별하는 그 처소의 입구에 해독할 수 없는 짧은 스웨덴어 문장이 동판에 새겨져 붙어 있었다. 통역을 불러 물어보았다.
"오늘은 나, 내일은 너."
통역의 입에서 간단히 이 말이 떨어졌다.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사자가 우리에게 전하는 그 통절한 메시지가 어두운 내 눈을 찔렀던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 공평한것이 있다면 바로 죽음이 아닌가 싶네요. -.쪽

매일매일의 삶에 충실할 때 죽음은 더 이상 죽음이 아닙니다. 오늘 하루하루를 충만히 사는 것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준비입니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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