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이 된다는 것은 현실적 환경에 성실함을 의미한다. 철저히 자신의 행복을 의식하며 사는 것이고, '행복을 의식한다'는 것은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목표에 맞추어 매진한다는 뜻이다.
행복은 대개 원하는 것을 이룰 때 느끼는 것이다. 반면에 마음 가는 대로 하는 일이 불행을 초래하는 경우는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다.
=>모두다 행복한 삶을 꿈꾼다.-.쪽
좋은 물건을 고르는 여자들은 자신만의 취향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취향에 부합하는 물건을 발견하지 못하면 결코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런 여자들의 특징은 물건이 싸다고 해서 자신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것을 사들이는 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녀들에게는 '쇼핑할 때 100퍼센트 마음에 드는 것만을 산다'는 원칙이 있다.
옷을 고를 때 90퍼센트 만족하는 것을 사게 된다면 그 모자란 10퍼센트 때문에 머지 않아 그 옷은 옷장 속에 쳐박히게 되어 있다. 그래서 가격이나 유명 브랜드에 혹해서 10퍼센트 부족한 물건을 사는 습관이 들어 있는 여자에게는 자신조차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물건만 넘쳐난다. 그건 금전적인 낭비일 뿐 아니라 본인의 취향을 계발하는 데에도 방해가 되는 악습관이다.
고급한 취향이란 명품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 허영심이 아니다. 주인에게 어울릴 때에 빛을 발하는 물건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다.
=>많이 찔리는 대목이네요.-.쪽
이상하게도 남에게 듣기 싫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그런 말을 들으면 더욱 못 견디기 마련이니, 남보다 화내고 괴로워하는 시간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만약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고치기를 권한다.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것과 같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의 미래가 어둡고 불투명한 것은 너무 뻔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항상 말을 아끼라 말들하죠.-.쪽
'잘 사는 것'의 정의를 내리면서 '현재의 삶에 행복해하고, 미래가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충만해서 사는 삶'이라는 표현이 일반적인 것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말이다.
보통은 '행복'이라는 것이 현재에 만족하며 더이상 바랄 게 없는 상태라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람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똑같이 안온한 삶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내일이 오늘과 다르고, 이왕이면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 않다면 우울증에 걸리고 말 것이다.
=>변화 없는 삶은 곧 감옥이다.-.쪽
행복한 여자들은 꿈이나 목표를 가슴에 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 매일매일의 일상이 꿈을 이루는 방향으로 달라지도록 노력할 줄도 안다. 그 꿈이라는 것이 꼭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내가 아는 한 공무원은 어려서부터 하고 싶어 했던 풍선 아트를 배우는가 싶더니 드디어 부업을 시작했다. 풍선으로 장식물을 만드는 방법을 새롭게 창작하는 경기에까지 오른 그녀는 새로운 '작품'에 도전할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출퇴근만 해도 월급이 나오는 직장에 안정된 가정까지 꾸리고 있는 그녀를 보고 다들 '사서 고생'이라고들 하지만 본인은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싶어. 혹시 알아? 내가 한국 풍선아트계의 새로운 장을 여는 사람이 될지……."-.쪽
행복의 감정은 꿈을 가지면서 생겨나기도 하고, 반대로 행복감이 꿈을 갖게 하기도 한다. 행복은 진보다 성취, 꿈이라는 단어와 반드시 연관성이 있는 말이다. 이제 행복이라는 말의 정의를 달리하고 행복과 친해지기를 바란다. 행복이 20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버려야 마땅하다. 행복해지고 싶어해야 행복해진다.-.쪽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는 알의 껍질을 깨고 나와 아브락사스 신에게 날아가는 새 이야기가 나온다.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하나의 세상을 파괴해야 하는 딜레마는 새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모든 좋은 것들은 크건 작건 간에 파괴하고, 떠나고, 버리는 일들을 통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행복은 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적인 것이며 적극적인 것이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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