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는 당나귀답게 마음이 자라는 나무 4
아지즈 네신 지음, 이종균 그림, 이난아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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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우리 무화과 열매 속에는 왜 이렇게 씨가 많이 들어 있는지 물어봐 줘서 고맙구나. 왜냐하면 이건 너희들에게 아주아주 중요한 문제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기회가 되거든."

엄마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바깥세상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이란다. 우리 무화과나무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몹시 위험한 곳이지. 바깥세상에 나돌아다니다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
그래서 우리는 자식을 아주 많이많이 낳지. 그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종족을 유지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해. 결국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 위한 몸짓인 셈이지.
이 무화과나무에는 수백 개,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무화과 열매들이 매달려 있단다. 그리고 그 열매들의 뱃속에는 너희들과 똑같이 생긴 씨들이 수없이 많이 들어 있지. 언젠가는 너희들도 땅으로 떨어져 무화과나무로 자라나게 될 거야.
하지만 현실은 아주 냉엄하단다. 이 무화과 열매들 속의 수많은 씨들 가운데서 온전히 나무로 자랄 수 있는 것은 몇 알 안 되거든. 겨우 한둘 정도? 많아 봐야 셋 정도에 불과해. 어떤 해에는 이 많은 씨들 중에서 단 한 알도 무화과나무로 자라지 못한 일이 있단다.-어느무화과씨의꿈쪽

사랑하는 아이들아! 그렇다고 너무 마음 아파하지는 말거라. 이 많은 씨가 모두 무화과나무로 자란다면 오 년 내에, 아니 적어도 십 년 내에는 이 세상이 온통 무화과나무로 꽉 차 버릴 테니까. 그렇게 되면, 다른 나무들은 서 있을 틈조차 없을걸.
그렇다고 그런 일이 생길까 봐 미리 걱정할 건 없어.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날 수 없으니까. 왜냐고? 음,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 세상은 아주아주 위험한 요인들로 둘러싸여 있거든. 우리의 적이 무척 많아.
조금 전에 내가 한 말, 기억하고 있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언제나 위험에 처해 있으며, 자신을 보호하고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씨를 아주아주 많이 낳아야 한다고 했던 말……. 그게 바로 자연의 법칙이란다.
우리 무화과 열매들이 위험에 빠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달콤하기 때문이야. 사람이나 동물들이 우리를 몹시 좋아한단다. 특히나 새들은 우리를 끊임없이 먹어 없애고 있지.
이토록 냉혹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만약 엄마가 뱃속에 씨를 겨우 몇 개만 품고 있다고 생각해 보렴. 아마 나무로 자라기 전에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걸. 그랬다면 무화과라는 과일은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을 테지. 이미 오래 전에 멸종돼 버렸을 테니까. 그렇지 않겠니?-.쪽

식물이든 동물이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할 수 있는 무기를 하나씩 지니고 있단다. 누구는 뿔이 있고, 누구는 가시가 있고, 누구는 뒷발질을 잘 하고, 누구는 아주 빨리 뛰고, 누구는 가죽이 매우 두텁지. 그 외에도 이빨이 몹시 날카롭거나 몸을 주위의 사물과 비슷한 색깔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도 하고…….
그런데 희한하게도 우리 무화과에게는 이렇게 특별히 몸을 보호하고 방어할 만한 무기가 없단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씨들뿐이야. 가련한 뽕나무들도 우리와 처지가 똑같아. 그러니까 이렇게 쉼없이 번식을 하는 것이지. 그것만이 방어 수단이 될 수 있으니까.
풀이나 나무뿐 아니라 동물들의 경우에도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종족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들이 있어. 딱히 힘이 세지 않거나 뚜렷한 방어 무기가 없는 나약한 동물들 말이야. 그들에겐 공격해 오는 적이 많을 수밖에 없단다. 그래서 그들도 새끼를 아주 많이 낳아. 그래야 그 중에서 살아 남는 놈들이 생기니까.-.쪽

예를 들면 토끼가 그래. 예쁘고 온순한 동물이지만, 그만큼 토끼를 노리는 적들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단다. 그들은 일 년에 두세 번씩 새끼를 낳는데, 한 번에 다섯에서 열 마리 가량을 낳는다고 해. 그래야 종족을 유지할 수 있거든.
어쩌면 사람들도 마찬가지일지 모르지. 사람에게 부(富)는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무기 역할을 한단다. 그래서 부유한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낳지 않아.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대를 이어가기 위해 아이들을 많이 낳을 수밖에 없단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부모가 제대로 돌볼 여유가 없기 때문에 죽어 버릴 확률이 높거든. 환경이 좋지 않아 병에 걸리기 쉽고, 병이 들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영양 결핍으로 어린 나이에 죽는 경우도 많단다. 요즘엔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 일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더라만.
이 모든 것은 너희들이 자유의 몸이 되어 세상으로 나가 보면 저절로 알게 될 일이야. 가난한 나라일수록 아이들이 많은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란다. 결국 수를 늘리는 것은 나약한 자들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곧 수가 많다는 것은 저항과 방어 그리고 존재의 무기가 되는 셈이란다.

=>존재의 이유를 느끼게 해준 어느 무화과씨의 꿈 중-.쪽

요즘도 저편의 밝은 곳으로 가기 위해 쉼없이 유리창에 부딪히며 애를 쓰는 파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 목숨을 잃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것을 바보짓이라고 생각하며 어두운 곳에 죽치고 앉아 있는 파리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는 파리들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진실은 있다. 어둠 속에 죽치고 앉아 있는 파리의 기념비가 세워졌다는 얘기는 파리들의 역사 그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까.-위대한 똥파리쪽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위험이 실제로 존재하는 위험보다 더 끔찍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존재하는 위험은 그 정체가 조금이라도 알려져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위험은 그 실체를 파악할 길이 전혀 없기 때문에 더욱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었다-양들의 제국쪽

어떤 교통 기관이든 간에 자신이 아닌 것으로 바꿔 보려는 순간, 그 자신으로도 남아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 무엇도 될 수가 없다.-내가제일운나빠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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