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자살 여행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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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사람들의 가장 고약한 적은 우울증이다. 비애, 한없는 무관심, 우울증이 이 불행한 민족을 짓누른다. 천 년의 세월 동안 이 땅의 사람들은 우울증에 굴복당했으며, 그들의 영혼은 음울하고 진지하다. 그 결과는 아주 파괴적이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곤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죽음뿐이라고 생각한다. 암울한 마음은 과거의 소련연방보다도 더 심각한 적이다. 그러나 핀란드인들은 투사의 종족이다. 절대로 굴복하는 법이 없으며, 끝까지 폭군에 저항한다.

-> 그전까지는 핀란드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 없지만 이제 북유럽에 속해 있는 핀란드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네요.-.쪽

죽음은 원래 그런 것이다. 해마다 수천명의 핀란드 남자들이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 가운데 죽음이 어떤것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돌아오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죽음에서 돌아와 알려주는 사람이 있어도 믿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쪽

대령은 공동의 운명이 두 사람의 운명을 도왔다고 시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적어도 잠시나마 도운 것은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대령은 결국 언젠가는 목을 매달 것이기 때문이다. 그 며칠 동안에 문제는 사라진게 아니라 다만 연기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계속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야 하는것 같습니다-.쪽

켐파이넨 대령은 렐로넨이 알코올을 아주 헤프게 다루는 것에 놀랐다. 렐로넨은 술병을 3분의 2 정도 비웠다 싶으면 병뚜껑을 단단히 막았다가, 호수 안쪽으로 바람이 부는 즉시 술병을 호수에 던졌다. 술병은 물에 둥둥 떠내려가서 언제든 다른 편 호숫가에 다다를 것이다. 반대편 호숫가까지는 족히 몇 킬로미터는 되었고, 술병을 보낸 사람은 자신의 우편물이 어디로 떠내려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이 부근의 여름 별장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한다네. 3분의 1 정도 남은 술병을 떠내려 보내는 것이 이곳에서는 일종의 관습이야." 렐로넨이 설명했다.-.쪽

대령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핀란드에서 알코올 값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비싼 술을 호수에 마구 던진단 말인가? 그것은 호숫가에 사는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서로 교류하는 방식이라고 렐로넨이 말했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의도적이기보다는 실수로 오래전에 그걸 시작한 사람이 있었다. 칠 년 전, 8월의 어느 날 아침에 처음으로 도수 높은 술병이 온니에게 떠내려왔다. 아주 맛 좋은 샹트레 코냑이었다. 당시 온니는 간밤에 마신 술 기운으로 심한 숙취에 시달렸는데, 적시에 떠내려온 코냑 병이 숙취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술 가게가 문을 열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가 호수에게 빚을 갚았다. 그 후로 이따금 병이 떠내려왔으며, 몇 년 전부터는 부쩍 그 횟수가 늘었다. 그 관습은 차츰 전체 호숫가 주변으로 퍼졌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크게 떠드는 사람은 없었으며, 후말라얘르비 호숫가 주민들 사이에서 그것은 무언의 비밀이었다. "작년 여름에 쉐리 세 병이 떠내려온 데다가 호수가 얼기 직전에는 보드카하고 코스켄코르바까지 횡재했다니까. 술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었는지, 병이 겨우 물에 뜰 정도였어. 그런 일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고. 나하고 비슷한 사람, 맛 좋은 코냑을 즐기는 마음씨 후한 친구, 아니면 호수 건너편 미지의 이웃을 생각하는 성실한 보드카 애호자가 저 너머 어딘가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야."

->처음엔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끝까지 읽어보니 재미있는 관습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을 재미있게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법은 아닐런지..



-.쪽

자살하려는 생각이 아주 나쁜것만은 아닌것 같아요. 세상이 사실 특별히 살기 좋은 곳은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특별히 살기 나쁜곳도 아니다.-.쪽

동유럽과 발트 해 연안 국가들에서의 변혁 이후로 삶의 의욕을 잃었다. 지금까지 평생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 사회적인 상황을 감탄해왔는데, 이제 그 모든 게 사라진 것이다. 마치 그동안 헌신적으로 후원한 소비에트 연방에게 속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실컷 우롱당한 기분이었다.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후로 온 세상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먼저 세상이 혼란스러워진 데 이어 해키넨의 세계관이 혼돈에 빠졌다.

->그래서 동유럽의 느낌은 호기심과 음울함이 함께하는것 같습니다.-.쪽

저녁이 되면서 뇌우는 핀란드 편에 머물렀다. 코르펠라는 카우토케이노를 지나 얼음 바다를 향해 달렸다. 그곳 노르웨이에는 해가 비치고 있었다. 곧 자정이 될 시각인데도 해가 지지 않았다. 소르요넨은 라플란드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땅을 소유하지 못한 탓에 그곳에서는 해가 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겨울에는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지만, 그때에는 대지가 눈과 얼음에 뒤덮인다.

코르펠라가 이 길로 곧장 목적지까지 달려야 할 만큼 죽는 게 급하냐고 승객들에게 물었다. 쿠사모에서 여기까지 몇백 킬로미터를 달려왔더니 좀 피곤하군그래. 여기 한적한 고원에서 최후의 밤 아닌 밤을 보내는 게 어떻겠소. 자살자들은 아무도 코르펠라의 생각에 반대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었다.

작은 호수 몇 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에 버스가 정차했다. 이제 그들은 바람이 거세고 해수면보다 높은 평원에 있었다. 숲은 거의 없는 대신 늪지대가 그만큼 넓게 이어졌다. 울라가 불을 피우고 나서는 커피를 끓이고 한 호숫가에 텐트를 쳤다. 물속에서 송어 한 마리가 첨벙거렸다. 잔잔한 물 위에 동글동글하게 물살이 퍼져나갔다.

->핀란드에도 백야가 있는것일까? 이 문장때문이라도 핀란드에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습니다.-.쪽

붉게 작렬하는 한밤중의 태양빛을 받으며, 자살자들은 두고 온 조국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조국 핀란드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잘못 다룬 탓에, 특별히 조국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행자들은 핀란드 사회가 냉혹하다고 입을 모았다. 삭막한 관습이 핀란드를 지배했으며, 핀란드 사람들은 서로에게 잔인하고 질투심에 찌들어 있었다. 탐욕스런 마음이 널리 팽배했고, 완강하게 돈을 움켜쥐기에만 급급했다. 핀란드 사람들은 의심이 많고 음흉했다. 웃는 경우에는 기뻐서라기보다는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마음이 컸다. 사기꾼, 협잡꾼, 거짓말쟁이들이 많았다.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눈앞이 핑 돌 정도로 많은 집세를 갈취했으며, 터무니없이 엄청난 이자를 우려냈다. 가난한 사람들은 걸핏하면 소동을 피우고 모든 걸 망가뜨리기 일쑤였으며,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킬 줄 몰랐다. 아이들은 그야말로 국가적인 애물단지였다. 집과 물건, 기차와 자동차에 지저분하게 낙서를 하고 창문을 깨뜨리고 엘리베이터 안에 잔뜩 토해놓든지 아니면 용변을 보았다. -.쪽

핀란드의 관직에 앉아 있는 신사 분들은 앞을 다투어 새로운 신청서 양식을 만들어내서는 국민들을 욕보이고 이 창구에서 저 창구로 허겁지겁 달려가도록 강요했다. 소매업자와 도매업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호주머니에서 마지막 남은 동전 한 닢까지 우려내었고, 투기꾼들은 이 세상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비싼 집을 지었다. 몸이 아파 병원에 달려가면, 교만한 의사들이 사람을 당장 도살해야 하는 늙은 말처럼 다루었다. 이런 모든 걸 참지 못하고 신경쇠약에 걸리면, 정신병원의 험상궂은 간호사들이 강제로 환자복을 입히고서 마지막 남은 한 줄기 분명한 생각마저 흐리게 하는 주삿바늘을 정맥에 꽂았다.-.쪽

자살자들은 말없이 차에 올라탔다. 울라 리스만키가 이번에는 정말이냐며, 지금 바다 속으로의 주행을 보기 위해서 두 번째로 달려갈 생각인데 괜히 헛수고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이제 대령이 나섰다. 대령은 마이크를 잡고서 침착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죽음을 향한 주행의 절정에서 적어도 열 명 내지 열다섯 명의 여행객이 정차 스위치를 누르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다고 고백했다.
코르펠라가 죽을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자신의 버스에 앉아 있냐고 물었다. 대령은 자신이 심리 치료를 목적으로 모험을 감행했다고 대답했다. 죽음의 경험이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예부터 알려진 지혜였다.
"내가 버스를 세우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소? 그랬더라면 우리 모두 지금쯤 저 아래 바다 속에서 물고기의 먹이가 되었을 게요."
코르펠라가 투덜거렸다.
"살다 보면 때로는 모험을 감행해야 하는 법이오."
대령이 말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죽음의 주행을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방금 전의 경험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모두들 다시 마음의 평정을 되찾으려면 시간과 휴식이 필요했다.-.쪽

오늘날의 가난한 사람은 백년전의 유복했던 시민보다 더 잘사는데도, 자신보다 부유한 사람들에 둘러 싸여있는 탓에 고통 받았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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