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안소민 기자]
 
▲ 고등학교 은사님께 선물로 받은 요리책. 엄마의 단 하나뿐인 요리책이다
ⓒ2006 이화여대출판부
친정엄마는 요리를 꽤 잘하시고 요리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신다. 요리관련 프로그램을 가끔 보시기는 해도 특별히 요리책을 보며 요리하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여느 엄마들이 그렇듯이 숙달된 솜씨와 손맛으로 뚝딱뚝딱 금세 한 상 근사하게 차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엄마의 부엌에 낯선 책 한 권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이 그것. 엄마는 마치 초등학생이 과외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다시 가나다를 공부하듯 책을 펼쳐놓고 요리의 기본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요리법은 물론이고 그간 늘 해먹던 익숙한 음식들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했다.

사실 이 책은 엄마의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선물로 준 것이다. 엄마는 십여 년 전 여고동창 모임을 통해 담임선생님의 근황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 다시 만나게 된 선생님께서 중년이 다 된 여고 시절의 제자들에게 이 책을 선물로 주셨단다.

이 책의 무엇이 초보주부도 아니고 요리깨나 한다는 엄마를 이렇게 사로잡았을까. 아무리 들춰보아도 다른 요리책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흔하디 흔한 사진 한 장 없고 메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은사님께서 주신 책이라 더욱 애착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그 밖의 뭔가가 더 있는 것 같다.

며느리에게 보낸 편지를 묶어 만든 '엄마표' 요리책

일단 눈에 띄는 점이라 하면 일반 요리책에 쓰는 딱딱한 문어체 대신 '-하려무나' '-하면 어떨까' 와 같은 구어체 말투다. 곁에서 직접 일러주는 듯한 자상함과 정겨움이 묻어난다. 실제로 지은이가 자신의 두 며느리를 의식하고 쓴 것이기에 더욱 살갑게 느껴지는 것이다.

지은이는 외국에서 사는 아들 내외와 손자에게 먹이고 싶은 음식과 요리법을 틈틈이 노트에 적고 그것을 며느리들에게 편지로 보냈다. 그 노트를 아들들이 컴퓨터로 정리하고 프린트하여 백 권의 '홈메이드 요리책'을 만들었다. 책 표지에는 지은이가 직접 '매일 해먹는 음식 만들기'라는 제목을 써서 정성을 더 했다. 이 책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 책속지에 직접 써준 '육범수' 은사님의 메세지.
ⓒ2006 안소민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천편일률적이고 엇비슷한 일반 요리책들의 요리법과는 달리 이 책에는 지은이 자신이 오랜 세월 직접 연구하고 창조해 낸 요리법들이 보석처럼 숨겨있다는 것이다. 지은이의 오랜 경험과 집안 풍속이 스며있다는 점에서 일반 요리책에서는 볼 수 없는 노하우가 담겨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마늘은 까서 플라스틱 통에 넣어두고 써도 되는데 1주일분 정도씩은 다져서 작은 통에 넣고 쓰면 손쉽다. 칼자루로 이기지 말고 칼등으로 톡톡 친 후 칼로 몇 번 다지면 쉽고 까놓은 마늘이 있을 때에는 마늘 다지는 기계로 해도 되는데, 난 그 기계 씻는 것이 더 힘든 것 같더라. 귀찮아도 가늘게 채 친 후 다시 다지면 마늘 누린내가 안 나서 좋지.'(마늘 손질 요령 중)

참치 캔을 넣으려면 김치에 식용유를 넣어 볶은 후 참치 캔의 국물을 따라내고 함께 섞어 볶은 후 국물을 부어 끓인다. 우리 집에서는 김치찌개가 끓을 때 감자를 썰어서 넣는데 거기 들어간 감자가 맛이 있다. 당면도 물에 불렸다가 김치찌개가 거의 다 익었을 때 넣어 당면이 익으면 먹지.('김치찌개' 중)


요리 방법도 방법이려니와 요리하는 지혜, 살림의 노하우를 함께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큰 수확이라 하겠다. 기본양념손질, 국물 내는 요령과 같이 요리의 기초 상식부터 손님상 차리는 법, 아이들 음식, 우리집 제사음식, 생일음식 여기에 외국생활을 하는 아들 내외의 환경을 고려해 간단히 해먹을 수 있으면서도 영양가 있는 서양요리 등 지은이 식구들의 환경과 입맛이 고려된 '엄마만의' 요리법이 소개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이 독자의 마음을 강하게 끄는 이유는 가족들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 잘 담겨있기 때문이다. 요리할 때의 마음가짐, 주부로서 식구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 한 끼의 식사를 준비할 때 들이는 정성과 노력 등은 비단 '며느리에게' 띄우는 글에서뿐 아니라 요리에 담긴 재료 하나 손짓 하나에도 잘 드러나 있다.

▲ 짧고 간결한 설명이 눈에 쏙쏙 들어온다. 사진이 없음으로 상상력은 더욱 증가된다
ⓒ2006 안소민
젓갈을 너무 많이 넣으면 김치가 싱싱한 맛이 없고 꼬랑꼬랑해지니까 젓갈 대신 생새우를 많이 넣는 게 맛이 좋지. 냉장고에는 익은 후에 넣어야지 미리 넣으면 김치가 냉 맞아서 맛이 없단다. 아이들이 김치를 잘 안 먹는 이유 중의 하나가 또 있는데 늙으면 신 것이 싫으니까 자연 덜 익은 것을 냉장고에 넣고 먹게 되는데 겉절이도 아니고 설익은 김치를 애들이 왜 좋아하겠니? 김치 같은 것을 담글 때 아주 어려서부터 엄마랑 같이 하면 아이가 안 먹거나 하지를 않으리라 생각한다.'

'지난여름 아이 둘을 데리고 서울 갔을 때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점심때였는데 "냉면 해주랴? 아니면 만두, 국수?" 하시는 물음에 간단히 먹자는 뜻에서 국수라고 대답했다. 봉투를 뜯고 국수를 삶는 것이 처음 할 일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머님께서는 밀가루로 국수 반죽을 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어머님의 음식 만들기는 그렇게 시작한다. 냉면은 반죽부터, 김치는 고추 말리기부터가 시작이다' (198쪽. 큰며느리가 쓴 '우리 시어머니 이야기')


가족 향한 엄마의 애정 듬뿍 있어 먹지 않아도 배불러

지은이의 다른 책들

지은이 장선용

1940년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이화여중, 이화여고,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졸업후 10년간 이화여대 학무처에서 일하였고 1964년 3월 이영일씨와 결혼, 희승, 희창 두 아들을 두었다. 1973년 11월에는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그 후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에서 살다가 1983년 귀국하여 현재 경기도 기흥에서 살고있다.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증보판)

 
ⓒ2006 이화여대출판부
본문에서 소개한 1993년 판은 현재 절판된 상태. 다행히 이화여대 출판부에서 증보판이 2002년 발간되었다. 책의 구성과 내용은 초판본과 동일하다. 특별히 요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냥 한번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요리를 준비하는 주부의 정성과 마음가짐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장선용 지음/ 이화여대출판부/ 11,000원

<음식 끝에 정나지요>

<며느리에게 주는 요리책>에 소개된 내용을 기본으로 싣되 미처 다 담지 못했던 아쉬운 요리법 위주로 소개했다. 사진이 첨가된 것이 특징. 이북요리와 같이 이채로운 요리법도 소개되어있다. 이 책을 구입한 주위사람의 평에 의하면 <며느리에게 ...>에 비해 음식가지수는 많으나 기본은 전편이 더 충실하다고. 지은이가 직접 사용하는 요리도구도 살짝 엿볼 수 있다. 장선용 지음/ 동아일보/ 14,000원
엄마가 이 책을 알고 난 후 달라진 점 중 하나는 계량스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설탕 몇 큰술, 간장 몇 큰술…. 요리프로그램에 나오는 요리사처럼 계량스푼을 사용하는 엄마의 모습이 처음에는 약간 생경하게 느껴졌다. 옛날 어머니들은 그런 것 없었어도 눈대중, 손대중으로 잘만 했는데 이제 와서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아니 이 책의 지은이인 장선용씨의 말에 의하면 그렇게 과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매번 같은 맛을 연출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물론 오랜 연륜이 쌓인 사람에게는 못 당하겠지만 말이다. 또 요리를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계량스푼의 사용이야말로 가장 확실하고 쉽게 배울 수 있는 지름길이다. 소금 약간, 설탕 적당량, 한소끔 끓여라 등의 아리송한 용어는 요리 9단이 아닌 이상 애매하고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시어머니의 권위를 앞세워 며느리에게 시댁의 풍속을 가르치고자 하는 책은 절대 아니다. 시어머님의 요리법은 어디까지나 참고할 뿐 더 나은 방법이 있거나 입맛이나 취향, 기호가 다르면 그때그때 첨가하거나 바꾸는 등 재량껏 사용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고 있다.

결혼하고 난 후 비로소 이 책의 진가를 알게 된 나는 이 책이 탐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절판까지 된 상태라 그 욕심은 더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부엌을 지켜온 이 책을 달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의 손때와 땀, 정성이 묻어있는 책, 하도 많이 봐서 이제 너절해진 엄마의 책에 스카치테이프를 곱게 붙여줘야겠다. 오래 두고 보시면서 음식 많이 만들어달라고.

/안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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