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에는 두 종류의 악어가 서식한다. 생존경쟁에서 밀려 변두리 삶을 사는 아래턱이 부러진 소시민과 그 소시민을 우악스럽게 먹어치우는 도시의 지하철.
한강에서 올라온 고영민 시인이 사육하는 <악어>(실천문학사.2005) 한 마리가 지하철1호선에 오른다. 3000회를 맞는 록뮤지컬 <지하철1호선>을 보러 가려는 사람들 때문인지 전동차는 사람들로 초만원이다.
“서 있는 것들은/모두 발목이 있는 것인가/잔뜩 힘이 들어간/저곳//화분에 심어놓은 고추 모종의/푸른 아랫부분을/내려보다가 문득,/너의 여린 발목을 잡는다//쉼 없이 서 있어/더 야윈/후들거리며 휘청, 걷고 있는/눈물겨운/저곳에”(‘발목을 잡다’)
직립이 힘든 악어는 고춧대처럼 여윈 사람들의 발목을 간신히 잡는다. 그러다 간혹 느낌이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으면 어쩐다.
“날이 추워지면서 출퇴근길,/붐비는 지하철 안/사람 몸 닿는 것이 좋다/......//생전 모르는 너와/몸이 맞닿은 오늘/....../내 몸 나도 모르게/불끈, 뜨거워지는 역과 역 사이/그리고 내 몸 함께 덥혀지는/컴컴한 땅속/나는 너에게 가만히 기댄 채/개찰된 이 하루/또, 환하게 너를 통과한다”(‘치한’)
뭐 어때, 날이 추웠을 뿐. 입술이 없으면(순망) 이가 시린(치한)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아무튼 밀고 밀치다 보니 용케 자리가 하나 났다. 대한민국아줌마들이 앉기 전에 잽싸게...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다 보면/옆에 앉은 한 고단한 사람/졸면서 나에게 기댈 듯 다가오다가/다시 몸을 추스르고, 몸을 추스르고//......//잠든 네가 나에게 온전히 기대올 때/....../내가 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한 나무가 한 나무에 기대어/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기대어/나 아닌 것을 거쳐/나인 것으로 가는, 이 덜컹거림”(‘나에게 기대올 때’)
종아리가 따뜻해지니 잠이 스르르 온다. 옆에 앉은 사람이 어여쁜 여자이면 좋겠지만, 또 어떠랴. 잠시라도 누구의 버팀목이 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저런......
“지하철 문에 한 여자의 가방이 물려 있다 강을 건너다 잡힌 새끼 누 같다 겁에 질린 가방은 필사적으로 뒤척이지만 단단한 하악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저 매정한 입은 몇 정거장을 지나쳐도 열리지 않고 숨이 잦아든 여자는 멍하니 제 깊은 상처, 물린 가방을 지켜보고 있다 반대편으론 다시 수많은 사람들이 닫히는 입을 피해 강으로 뛰어들고 다시 재빨리 뛰어나간다...... 이 乾期의 땅, 유유히 강은 흐른다”(‘악어’)
하마터면 어린 누가 큰 악어에게 잡아먹힐 뻔 했다. 하지만 도시에서 이런 일은 다반사다. 전동차는 백중사리 밀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강철교 위를 무표정하게 달린다.
“한 여자가 지하철역 입구에/광고용 전단지를 가득 든 채/서 있다/주춤주춤, 건네지 못하고/사람들 사이 머뭇거리기만 한다//누군들 내밀고 싶지 않았겠는가/한가득 마음 품고 있으면서/평생토록 차마 내밀지 못한/내 한 뭉치 사랑아/....../여자 하나가 아직도/거세어지는 물소리를 오르내리며/물떼새처럼 머뭇대고 있다”(‘검은머리물떼새’)
지하철에서 나와 집으로 가려는데 아직은 젊은 물떼새가 지푸라기처럼 여린 발목을 강심에 담고 있다. 피라미 하나 낚아채지 못하는 저 연약한 부리를 언젠가 본 적이 있다.
“아내의 등을 민다/그녀의 뒷모습, 한 페이지를/때수건으로 민다/....../세월의 한켠/묵념처럼 뒤돌아 앉은 삶/언제쯤 나는 말을 걸어야 하나/언제쯤 나는 말을 놓아야 하나/빈 명찰 같은 사람아/첫선을 보듯 앉아 있는 내 중년의 얼굴이/그녀의 등/볼록거울에 비친다”(‘아내의 등’)
집으로 돌아와 악어의 까칠한 가죽으로 아내의 등을 민다. 동고동락하는 아내의 허연 등이 거울처럼 환해 슬퍼질 때가 있다. 말없이 아내의 손을 꼭 쥐고 잠자리에 드는데,
“아래층에서 못을 박는지/건물 전체가 울린다./그 거대한 건물에 틈 하나를/만들기 위해/건물 모두가 제 자리를 내준다/그 틈, 못에 거울 하나가 내걸린다면/봐라,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양보하면/사람 하나 들어가는 것은/일도 아니다./저 한밤중의 소음을/나는 웃으면서 참는다.”(‘즐거운 소음’)
아래층에서 못을 박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을 박는지 울림이 거창하다. 이불 속에서 웃는 아내의 겨드랑이 틈에 손을 넣고 새처럼 품는다. 젖어 쉽사리 빠지지 않는 밥그릇처럼 서로의 틈을 메우며 봉분처럼 누워 오랫동안 밀고 당기는 저녁. 악어의 눈에서 질긴 눈물이 흘러 메마른 강심의 틈을 찾아 간다. 건기는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