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땐 하늘을 한번 바라봐


[조선일보 김윤덕기자]

모르긴 해도, 이 동화는 사춘기로 막 접어드는 ‘남자 아이’의 심리를 가장 잘 묘사한 창작물 중 하나다. 동화작가가 대부분 여성이고 엄마였기 때문일까. 그 동안 등장인물의 성(性)이 특별히 의식되지 않고 ‘어린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려 읽혀 왔다면, 이 작품은 중학교 입학을 앞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로 접어드는 문턱에 선 한 소년의 심리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상우는 초등학교 졸업을 두 달 앞둔 6학년생.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명랑하며, 모난 구석 없이 평범하다. 상우에게 유일한 아킬레스건은 아버지다. 3년 전 아무런 이유 없이 집을 나간 아·버·지. 정직한 상우이지만, 학교 야영에 아빠를 참석시키라는 선생님 지시엔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거절한다.

아버지의 부재뿐 아니다. 상우는 “사는 건 곧 죽어가는 과정”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엄마, 세상에서 자기 느낌이 가장 중요한 누나 때문에도 고민이 많다. 집 나간 아빠를 찾을 생각은 않고 너무나 멀쩡히 생활하는 엄마, 현실주의자를 자칭하지만 이기적인 철부지일 뿐인 누나는 상우 눈에 ‘비정상’이다.

상우의 숨통을 틔워주는 건 컴퓨터다. 상우가 만든 홈페이지에 ‘오폭별’이란 이름으로 들어와 말을 거는 익명의 소녀. ‘오백년 전에 폭발한 별에서 온 외계인’이란 이름이 암시하듯 아빠에게 상습적으로 매를 맞고 자란데다 결석을 밥 먹듯 하는 ‘문제아’ 오폭별은 가족 문제 때문에 끙끙 앓는 상우를 오히려 ‘통 크게’ 위로한다.

“별이 폭발했어. 그리고 지구인들이 그 광경을 직접 봤단 말이지. 그런데 진짜 폭발은 사백 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잖아. 사백 년 만에 우리 눈에 보였다구. 그건 결국 이 우주가 무지무지하게 넓고 크다는 거 아냐? 사실 우리가 말하는 진실이라는 것도 우주적 시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겠어?”

거짓말로 쓴 ‘아빠와 함께 한 체험학습’으로 상을 받지만, 그에 얽힌 사연이 들통나면서 오폭별과 함께 가출을 결심하는 상우. 하지만 소년은 엄마와 누나 곁에 남기로 마음을 돌린다. ‘아빠가 비워놓은 자리를 지켜야 할 것 같아 숨이 찼’던 아들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던 엄마의 마음을 발견하고 나서다.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아빠가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걱정하며 안달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나도 이제 엄마나 누나처럼 걱정 대신 씨알만한 희망을 품고 싶었다….”

폭풍 전야로 들어선 아이들에게 작가는 이렇게 당부하는 것 같다. “힘드니? 그럼 하늘을 한번 바라봐. 저 드넓은 우주를 말이야. 그런 다음 숨을 한번 크게 내쉬는 거야.”

(김윤덕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sio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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