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1년 동안의 자유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시계는 다가오는 토요일 오후 세시부터 정확히 열두 달 동안 돌 것이다.
김선우 시인은 오후 세시의 탑골공원 풍경을 통해 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할머니들의 분칠을 “꽃잎을 찍어놓은 젖유리창에 어릉어릉”(‘봄날 오후’)댄다고 읊었다. 또 <오래된 미래>에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여든 두 살의 할아버지가 지붕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활기에 차 있었고 우리는 날씨에 대해 한 두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 세시에 그는 죽었다. 그는 잠든 것처럼 평화롭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삶은 마치 토요일 오후 세시처럼 아련한 혼곤과 무기력한 평화를 느끼게 한다. 혼곤과 평화가 죽음의 철로 위에서 어룽거리는 생의 세시에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혹 준비가 안되어 있다면 알베르토 망구엘이 들려주는 <독서일기>(생각의나무. 2006)를 훔쳐보자. 망구엘은 해시계가 오후 세시를 가리키는 삐딱한 삶의 복판을 열정과 치열함으로 독서를 반복하며 성찰하기를 즐긴다.
<독서일기>는 2002년 6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꼬박 일 년 동안 10세기 기록물에서 20세기 동화까지, 달마다 한 권씩 열두 권의 책을 일기 형식으로 사색한 책이다. 한 도시에 2년 이상 머물지 않는 ‘도시 유목민’을 자처하는 작가가 일상 속에서 체험한 가족, 고향, 전쟁, 빈곤 등 복잡한 일상을 유쾌한 독서가의 일기를 통해 은밀하게 엿볼 수 있다.
“나의 직업은 독서가다. 차라리 남들보다 열정이 많은 독자”라는 망구엘은 학창시절 ‘피그말리온’ 서점에서 일하다 세계적인 문호 보르헤스를 만난다. 시력을 잃어가는 보르헤스를 위해 책을 읽어주던 망구엘은 정말 신화 속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이 생명을 얻듯 문학적 영감을 얻게 되었다. 보르헤스의 유쾌 통쾌 명쾌한 문장처럼 그의 글은 독자들과 대화를 시도하면서 시간의 터널 속에서 기억을 뽑아내는 두루마리 책에 비유된다.
책은 6월 어느 토요일, 범죄를 저지르고 카리브해 외딴섬으로 도피한 남자의 내면의 갈등을 그린 <모렐의 발명>을 시작으로, 10월에는 코넌 도일의 추리소설 <네 사람의 서명>의 비극 속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다시 해가 바뀌어 <독서일기>의 종착역인 5월이 다가오자, “나는 해시계다. 어떤 말로도 새들에 대한 내 생각을 형언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토요일 오후 2시59분59초. 책을 나침반 삼아 일 년 동안 사유의 항해를 한 열정적인 독서가의 해시계가 다시 오후 세시를 향하고 있다. 혼곤과 평화가 교차하는 시간에 <독서일기>를 잠시 덮고 눈을 감으면 글자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들어 올 것이다. 꿈을 꾼 듯 몽롱한 시간의 흐름 속에......
(그림 = 에드워드 본 존스 作 `영혼의 경지`(피그말리온시리즈 중), 1878)[북데일리 김연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