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후에 오는 것들 - 공지영 사랑 후에 오는 것들
공지영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2월
구판절판


"잘못은 사람들이 하는데 벌은 바다가 받는 거 같아,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홍이야, 나이가 들면 자신이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때로는 축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단다."
할아버지가 건강했을 때라면 나는 입술을 빼물고 혀를 낼름 내밀었을 것이다. 추리 소설의 끝 장면을 미리 알려 주는 것처럼 그건 내게 재미없는 이이야, 내가겪을거야, 내가 겪어서 내가 깨달을거야,하고. 그러나 그날 서귀포 먼 바다, 배들이 들어와 쉬고 있는 그 바다를 바라보면서 나는 묻고 싶었다. 할어버지는 그래서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이십년이 지나도록 언제나 할머니의 사진을 책상 위에 놓고 있는 거야? 하고.-50-51쪽

"있잖아, 쏘아 버린 화살하고 불러 버린 노래하고 다른 사람이 가져가 버린 내 마음은 내가 어쩔 수가 없단 말이야, 짜샤."-99쪽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린 것이다. 나는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이 호수가 둥글다는 생각이 들었다. 둥그니까 이렇게 앞으로 뛰어가면 다시 그가 서 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나간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결국 그에게 멀어지면서 다시 그에게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원의 신비였다.그러니 이 원에 들어서 버린 나는 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다. 어찌 되었든 모두가 그에게로 가는 길이다.-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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