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비운의 여류 동요시인 가네코 미스즈의 주옥같은 시 60편을 담은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소화 펴냄)가 번역, 출간됐다.

스무 살 때인 1923년 미스즈라는 필명으로 시를 짓기 시작한 그녀는 7년 후 세상을 떠나기까지 생명의 다정함과 쓸쓸함을 노래한 아름다운 시 500여 편을 남겼다.

"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검은 구름에서 내리는 비가,/은빛으로 빛나는 것이.//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파란 뽕나무 잎새 먹고 있는,/누에가 하얗게 되는 것이.//난 이상해서 견딜 수가 없어/아무도 손대지 않는 박꽃이/혼자서 활짝 펴나는 것이.//난 이상해서 견딜 수 없어/누구에게 물어봐도 웃으면서/당연하지, 라고 말하는 것이"('이상함' 전문)

"아침놀 붉은 놀/풍어다/참정어리/풍어다//항구는 축제로/들떠 있지만/바닷속에서는/몇만 마리/정어리의 장례식/열리고 있겠지/"('풍어' 전문)

새끼를 잃은 어미 참새의 슬픔, 깨진 유리조각을 미처 치우지 않아 개가 다쳤을 때의 마음 등을 담은 그녀의 시들은 단순하고 간결하지만 가슴 언저리를 한없이 아릿하게 만든다.

1926년 이즈미 쿄카, 기타하라 하쿠슈 등 일본의 유명시인들이 회원으로 있던 '동요시인회'의 최연소 회원이 되기도 했던 그녀. 그러나 그녀의 짧은 삶은 그녀의 시들처럼 온전하지 못했다.

어려서 이모집에 양자로 보내져 성장한 남동생은 친누나인지도 모르고 가네코를 사랑했고, 이 사실을 눈치챈 계부는 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가네코를 한 서점 지배인과 결혼시켰다.

방탕한 생활로 평판이 좋지 않았던 남편은 결혼 후에도 가정을 소홀히하며 유곽을 밥 먹듯이 들락거렸고, 심지어 아내의 작품활동과 편지 왕래를 금지했다.

1930년 가네코는 남편과 이혼하지만 남편이 자신을 괴롭힐 작정으로 딸을 데려가겠다고 요구하자 결국 수면제를 먹고 자살했다. 그리고 그녀의 시들도 그녀의 죽음과 함께 세인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50여 년이 지난 1982년. 어렸을 때 '일본동요집'에서 가네코의 시를 접했던 동요시인 야사키 세쓰오가 어린 시절의 감동을 잊지 못해 그녀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야사키는 가네코의 남동생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마침내 가네코가 죽기 직전 남동생에게 맡겨두었던 유작이 담긴 세 권의 수첩을 얻어 세상에 내놓게 됐다.

가네코의 아름다운 시들은 현재 일본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으며 그녀의 기구한 운명에 얽힌 일화와 함께 독일어, 프랑스어 등 세계 13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고 있다. 140쪽. 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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