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목사가 담아낸 제주 들꽃이야기

“내 안의 뼈란 뼈 죄다 녹여서 몸밖으로 빚어 낸 둥글고 아름다운 유골 한 채를 들쳐업고 명부전이 올려다 보인 뜨락을 슬몃슬몃 핥아 가는 온몸이 혓바닥뿐인 生이 있었다”

서정춘 시인의 시 ‘달팽이 略傳’이다. 제주 시골목사가 쓴 <달팽이 걸음으로 제주를 보다>(안그라픽스. 2006>는 업보의 집 한 채를 머리에 이고 달팽이의 촉수로 세상을 본다.

“빨리빨리, 큰 것, 잘생긴 것, 높은 것”에 대한 현대인의 욕망이 바벨탑처럼 하늘을 찌르려 하는 세기에 저자 김민수 목사의 시선은 “느리고, 작고, 못생기고, 낮은 곳”을 향하고 있다.

어느 봄날 산책길에서 만난 양지꽃을 보고 들꽃의 신비 속으로 빠진 김 목사는 불혹을 넘은 나이에 평생지기 친구를 만났다고 고백한다.

“내 삶의 화두는 들꽃이다”고 선언한 김 목사는 “느릿느릿 걸어야만” 그 꽃들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달팽이 눈 같은 김 목사의 렌즈는 겨울을 이기고 피어나는 세복수초와 변산바람꽃, 4.3항쟁의 아픔이 담긴 피뿌리풀꽃에서 동백까지 제주의 사계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여행의 끝에서 김 목사는 “체감속도 20km로 걸었더니 참 많은 것이 보인다”고 물봉선처럼 수줍게 속삭인다.

“장미가 진다/바람 속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이 저녁 외로움이 더 달지 않도록/어느 길모퉁이의 어떠한 표정에도 조심한다/우리는 늘 어디가 아팠던가/....../장미가 졌고/비바람이 몰려와 장마가 시작된다”(장석남 ‘여정(旅程)’)

우리 삶의 여정은 ‘장미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장마가 오고, 장마라는 글자에 점하나를 빼면 도로 장미가 환하게 피는 그런 것은 아닐까’.

책 속에서는 여전히 제주의 비바람이 몰려오고, 바람 속에서 달팽이 한 마리 조약돌에 올라 생의 물기를 자꾸 말리고 있으리라.

섬에서의 여행을 접고 뭍으로의 접안을 준비 중인 달팽이 목사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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