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 시공아트 29
프랭크 휘트포드 지음, 김숙 옮김 / 시공아트 / 2002년 7월
품절


오늘날에는 클림트에 쉽게 공감할 수 있으며, 그가 난해한 관념을 생생하고 활기찬 회화 언어로 표현하기 위해 동시대인들이라면 행하지 않았을 일, 즉 경화되고 공허한 우의적 언어를 내던지려 했다는 것을 간단히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클림트가 모로나 르동 같은프랑스 상징주의 화가들처럼 모허성을 추구하였고, 삶의 가장 심오한 신비는 암시와 은유로서만 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클림트를 비난한 자들은 반동보수적이었지만 정당한 비판도 하였다. <철학>은 해석을 거부하는 면이 있었고 본래 목적을 만족스럽게 충족시키지 못하는 면도 있었다. 미술관에 걸면 세부를 면밀히 관찰할 수 있어 인상적인 그림이 되겠지만, 빈 대학의 대강당 천장 같은 높은 장소로 옮겨지면 세부가 불분명해지기 때문이다.-59쪽

미국의 미술사가 커크 바니도는 클림트의 <키스>가 동일한 제목을 갖는 브랑쿠시의 조각품과 같은 시기에 제작되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클림트의 작품과 좀더 철저한 현대적 미술가인 브랑쿠시의 작품 간의 차이가 한눈에 드러난다. 클림트와 부랑쿠시는 둘 다 원시미술, 이국적 미술, 민속미술 등 다양한 양식에 이끌렸고, 이를 자연주의에 맞서는, 그리고 형식적이고 정신적인 강렬함을 얻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브랑쿠시가 단순화하고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나간 반면, 클림트는 복잡하게 만들고 장식을 증대하고 효과와 암시의 층을 증복시킨다.-118쪽

클림트의 초상화를 동시대 화가들의 초상화와 다르게 만드는 두 가지 요소는 움직임의 결여와 장식성이다. 클림트가 묘사한 여성들은 지성 또한 경험이 평정을 가져다 준 듯 정지되어 있다. 그러나 외부의 힘에 복종하는 듯도 하다. 이들은 겹겹의 장식층에 갇혀 장려한 화석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으며 광택나는 복잡한 문양의 마노로 굳어 간다. 날도래 문양의 모자이크 함처럼, 장식은 운명적으로 상처받기 쉬운 이 이국적인 생명체를 약탈자의 반갑지 않은 관심으로부터 보호한다.-134쪽

안톤 파이스타우어는 클림트의 사후 그의 업적을 요약하면서, 클림트는 "서유럽에서는 이해될 수 없었고...단지 빈에서만, 그리고 부다페스트나 콘스탄티노플에서 훨씬 잘 받아들여졌다."고 적었다. 오스트리아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지속된 클림트의 인기는 위의 흥미로운 주장과는 모순되지만, 이 주장에는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다. 클림트의 작품은 다른 유럽 미술가들과 놀랄 정도로 달랏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전통적, 예술적 범주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193-194쪽

클림트의 후기 드로잉 중 상당수가 여성 누드이고 도 이중 많은 예가 매우 에로틱한 성격을 띠어서 도판으로 실리거나 전시되지 않은 듯하다. 더구나 그 대부분은 개인소장품이다. 이는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수 없다. 클림트의 가장 에로틱한 드로잉들은 최상의 드로잉에 속하기 때문이다.-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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