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소리가 너무 무거워 갈 수가 없어요. 피아노 배우러 오는 아이들이, 내게 말했지요…. 내가 치는 피아노는, 건반 위에 빗방울이 떨어져 저절로 울리는 소리 같다구요. 내 발소리가 너무 무거워서, 그래서 그래요…."-여름휴가쪽
이른 봄볕과 연둣빛 예감에 둘러싸인 실버들 가지와 백양나무숲과 두더지들이 파헤치고 지나간 흙더미들과 카누를 탄 물고기 같은 얼굴의 사람들, 그리고 단단해 보이는 청색의 강물 사이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오래 서 있었다. 나는 자라 잡는 사람들과 작은 갑각 속에 자신을 밀어 넣고 죽은 체하는 것이 전부인 자라를 증오했다. 동시에 나 역시 악어의 입 속에 들어갈 때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챘다. 이미 죽은 체하여 아득히 고통을 속이는 것. 자라에겐 언제부터인가 강물 전체가 악어의 입 속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고통이 오래 지속되고 그 고통을 오래 속이다보면 어느 날 등이 휘어지며 갑각의 지붕이 되기도 하는지. 그래서 삶과 죽음을 함께 업고 다니기도 하는지.-장미십자가쪽
벌레는 카프카의 소설 속에서 말고는 어디에 있으나 꼭 벌레 같죠. 가만히 들여다보면 '벌레'라는 글자도 그렇고, 또 그것을 입 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려보면 그 중얼거림도 꼭 입 속에 숨어 있다가 입 밖으로 나오려고 등껍질로 입천장을 밀어 올리는 벌레의 움직임 같지요. 벌레의 생각도 우리가 그것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꼭 벌레 같을 것 같고, 벌레가 글을 쓴다면 그 글도 꼭 벌레 같겠지요. 때로는 사람도 벌레 같을 때가 있고, 벌레의 생각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정말 벌레라면 그렇지 않을까요.-카프카의여인쪽
그런데 곧 죽음은 별 것 아닌,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건너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가 걸어왔던 길이 고달팠던 삶이었다면 죽음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땅 속에 묻혀 있고, 그는 그 곁에 앉아있는 차이일 뿐이다. 죽음도 운명일 텐데, 어쩌겠는가.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아버지도 죽었고, 어머니도 죽었고, 모든 사람들이 다 죽지 않는가. 그가 발버둥친다고 해서 운명이 그를 비켜 갈 리 없을 것이다. 그가 고통스럽게 살아왔던 세월을 슬퍼할 일이지, 죽음을 슬퍼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고통스러운 삶의 종지부를 의미하는 죽음은 그가 양손을 들어 환영해야 할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고통을 굳세게 이겨내면서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했던 삶, 그 삶을 되도록 웃으면서 하직해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다만 4개월 동안 그가 살아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여겨졌다. 그것은 형벌이었다. 그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렇게 끔찍한 형벌이 그에게 내려지는 것일까. 아버지가 운명했던 것처럼 갑자기 죽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 그가 들에 나가려고 할 때, 함께 가자고 나서려고 했던 아버지는 그가 돌아와서 보니까 잠자는 것처럼 누워있었고, 영원히 눈을 뜨지 않았다. 슬픔을 토해내는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는 처음으로 이 세상에 죽음이라는 비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운산신화쪽
-바보 이반! -이 독한 것. 아버지는 침대와 장롱 사이, 쪼그려 앉은 내 앞에 서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잠시 시간을 흘려보낸 뒤 무겁게 그 입이 열렸다. 가라앉은 목소리에선 냉기가 돌았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고아원에 보내겠다. 씨근거리며 턱을 치켜들고 바보 이반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보았다. 아버지의 눈언저리는 두려움과 슬픔이 녹아들어 검은 테두리를 두른 듯 보였고 무슨 까닭인지 몸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잠시 동안 아버지의 고개가 서서히 시계 반대 방향으로 15도 가량 기울어져서는 나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무언의, 애원하는 듯한 몸짓. 이상하다. 나는 얼떨떨했다. -이 빈 언니요…. 아버지는 턱을 떨어뜨리며 긴 숨을 토해냈다. -그래…. 아버지가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손잡이를 돌리기 전 흘끗 돌아보았는데 나는 도저히 그 눈동자의 의미를 해독할 수 없었다.-이반언니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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