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듬히 누운 여자의 누드는 서양 회화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소재 중의 하나다. 여성은 거의 예외 없이 응시의 대상이다. 이는 남성의 욕망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남성 중심의 미술사가 그 주범이다. 그 유명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서도 여성 미술가의 이름은 없다. 진정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 것일까.
저자는 이 질문에 아니라고 답한다.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많았지만, 다만 그들을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 대부분의 미술사 책이 남성이 만든 작품, 남성을 위한 작품, 남성이 위대하다고 평가한 작품만을 다뤄왔다는 평가다.
저자는 한 미술관의 소장품을 예로 든다. 미국
페미니스트 그룹 ‘게릴라 걸스’ 조사에서 메트로폴리턴 미술관 소장품의 85%가 여성을 그린 그림인 데 비해 여성이 그린 그림은 단 5%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림들이 대부분 벌거벗은 채로 남성 관객을 유혹하는 여자들,
롤리타를 연상시키는 조숙한 소녀들, 지나치게 이상화한 미의 상징들, 예쁘게만 묘사한 가정 생활, 무시무시한 노파 등 천편일률적이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남성 미술가들이 여성을 어떻게 왜곡했는지를 따져본다. “얼마나 잘 그렸든, 소파에 누운 여자 누드화 한 장을 더 그리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가”라고 되묻는다.
또 여성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는 어머니를 표현할 때도 단아하고 인자한 모습만을 고집하며 임신 기간의 다양한 단계와 출산의 모습을 균형 있게 다루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여성의 경험은 재현할 만큼의 중요성이 없다고 생각했고, 출산 자체가 깨끗하지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어머니의 모성과 그 상징성은 높이 사면서도 실체를 부정하는 모순적인 태도라는 것이다. 저자는 ‘위대함’이란 어떤 기준에 따라 정해지는 것인지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책은 여성이 누드를 공부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20세기 초까지 여성의 올림픽 참가가 금지됐던 사실을 환기시킨다. 근육질 여성은 아름다움과 힘에 대한 기존의 개념을 흔들었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만들어 가는 균형 잡힌 미술사, 진정한 ‘인간 미술사’를 생각케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