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토니오 스카르메타(1940∼)의 소설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1985)는 칠레의 국민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에 대한 오마쥬일 뿐 아니라 군부독재의 궁핍한 시대를 이겨낸 칠레 민중들에 대한 지대한 경의의 메타포로 읽혀져야 할 것이다. 소설은 작가 스카르메타로 이해되는 화자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소설의 주인공 격이라고 할 만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마리오 히메니스의 존재에 대한 회상을 시도하는 부분으로 인해 일종의 격자 소설 형식을 이룬다. 이를 통해서 아마도 스카르메타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네루다의 이야기가 아니라 네루다의 시에 매료되어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수많은 이름없는 칠레 민중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자 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소설은 1969년과 1973년 사이 칠레의 작은 해안 마을을 무대로 한다. 아버지를 따라 고기잡이를 하던 젊은 주인공 마리오 히메네스는 고기잡이에 더 이상 재미를 못 붙이던 찰라에 그럴바에는 나가서 다른 일을 찾으라는 아버지의 성화에 시내에 나갔다가 우연히 이슬라 네그라라는 외딴 마을에 정주한 시인 네루다에게 오는 편지를 전담하는 우체부가 된다. 매일 매일 우편물을 배달하며 마리오는 위대한 시인 네루다와 친구가 되고, 네루다는 마리오가 시와 메타포에 친숙하게 도와준다.
마리오는 네루다의 시구들을 암송하며 동네 과부 주점의 딸인 베아트리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베아트리스의 어머니가 두 사람의 만남을 반대하였으나, 모든 이들이 1970년 9월 4일 살바도르 아옌데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던 날 밤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베아트리스의 어머니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네루다는 두 사람의 결혼 증인이 되고 태어날 아이의 대부가 된다. 마리오와 베아트리스의 결혼 피로연을 뒤로하고 네루다는 새로 출범한 아옌데 정권의 프랑스 대사로 길을 떠나게 되고, 마리오는 네루다 전담 우체부로서의 일자리가 위태롭게 되고 장모의 주방에서 일을 하며 태어난 아들을 바라보며 후에 ‘파블로 네프탈리 히메네스 곤잘레스의 연필 초상’이라는 시를 일간지에 응모하며 시인의 꿈을 키우게 된다.
1971년 네루다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우리는 찬란한 도시들로 입성하리라’라는 랭보의 시로써 수상 연설을 하게 된다. 마리오는 네루다를 위해 이슬라 네그라의 파도와 바람 소리를 녹음해 보낸다. 이후 소설은 병든 네루다의 귀환과 보수진영의 사보타지와 물자란에 대한 언급, 1973년 9월 11일의 군사 쿠테타, 9월23일 네루다의 죽음과 장례식, 마리오의 연행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피노체트의 군사독재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베를린의 망명지에서 집필하였던 이 소설의 처음 제목은 ‘불타는 인내’였다.